문화류씨

문화류씨

[ 文化柳氏 ]

요약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시조는 류차달이다.
문화류씨세보

문화류씨세보

문화는 지금의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일대에 있던 옛 지명으로, 후삼국시대에는 유주(儒州)라 불렸다. 시조 차달의 9세손 경(璥)이 최씨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회복시킨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지고, 그의 고향인 유주를 식읍(食邑)으로 하사받음에 따라 후손들이 문화를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다.

시조 차달의 10세손 내지 12세손 대에서 14파로 크게 나뉘는데, 그중 역사상 벼슬의 역력이나 인구수에서 대파(大派)를 이룬 것은 충경공파(忠景公派:亮)·좌상공파(左相公派:曼殊)·하정공파(夏亭公派:寬)·검한성공파(檢漢城公派:元顯)·지후사공파(祗候使公派:仁修) 등의 5파이다.

충경공파의 파조(派祖)인 량(亮)은 시조 차달의 14세손이며,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태종 때 예문관대제학·우의정 등을 지냈다. 그의 5대손 관(灌)은 인종 때 좌의정을 지냈는데 명종 때 척족(戚族)인 파평윤씨(坡平尹氏)의 (大尹:尹任)·소윤(小尹:尹元衡) 사이의 정권쟁탈전에서 소윤 일파에 의하여 사사(賜死)되었다. 량의 백씨파(伯氏派:府尹公派)에서 사원(思瑗)이 선조 때 임진왜란의 (宣武功臣)에 책봉되었다.

좌상공파의 파조인 만수(曼殊)도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芳遠)에게 참살당하였다. 그의 현손 순(洵)은 연산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6세손 전(琠)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내는 등, 만수의 후손에서 상신이 많이 나왔다.

하정공파의 파조인 관(寬)은 조선 태종 때 예문관대제학, 세종 때 우의정에 오르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그의 9대손 상운(尙運)은 속종 때 으로 특진되어 영의정을 2회, 중추부판사를 3회 지냈으며, 아들 봉휘(鳳輝)는 영조 때 좌의정을 지냈다. 한편 관의 둘째아들 계문(季聞)은 세종 때 형조판서를 지냈고, 계문의 손자 담년(聃年)은 중종 때 병조판서를 지냈다. 조선 중기의 실학자로 이름난 형원(馨遠)은 계문의 8세손이다.

지후사공파에서는 의 한 사람인 성원(誠源), 정조 때 실학자로서 (朴齊家)·(李德懋)·(李書九) 등과 함께 ‘한문신파사가(漢文新派四家)’로 불린 득공(得恭)이 나왔다. 그러나 광해군의 장인 자신(自新) 일가는 대북파(大北派)로서 뒤에 크게 화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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