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봉동

용봉동

[ Yongbong-dong , 龍鳳洞 ]

요약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
광주 북구청

광주 북구청

위치 광주 북구
면적(㎢) 3.14㎢
문화재 정지장군환삼(보물 336), 장흥임씨 의복(중요민속자료 112), 십신사지 석불(광주유형문화재 2), 십신사지 석비(광주유형문화재 3), 강진 김해김씨가 상여(광주민속자료 4), 광산노씨 분묘출토명기류(광주민속자료 6), 김봉선유품(광주문화재자료 22), 분청사기전라도명항아리(광주문화재자료 22)
인구(명) 4만 1127명(2008)

면적 3.14㎢, 인구 4만 1127명(2008)이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속한다. 동쪽은 문흥동과 접하고, 서쪽은 운암동, 남쪽은 신안동·중흥동, 북쪽은 매곡동·오치동과 접한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와지면(蛙只面)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관내에 있는 반룡리(盤龍里)·용주리(龍珠里)·봉곡리(鳳谷)·청계리·하촌리 각 일부를 병합하고, 반룡과 봉곡의 이름을 따서 용봉리라고 하였다. 서방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 풍향출장소 관할이 되었고, 1957년 동(洞)제 실시에 따라 신룡(태봉)동회 관할이 되었다. 1973년 구(區)제가 실시되어 태봉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서구 관할이 되었다가, 1980년 신설된 북구에 편입되었다. 1983년 태봉동이 신안동과 용봉동으로 분동되어 오늘에 이른다.

법정동명과 행정동명이 같다. 동쪽 각화동 대봉산 기슭에서 내려오는 경방천과 북쪽 일곡동에서 흘러오는 용봉천이 합류하는 왕개마을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마을로 반룡마을·봉곡마을(저불마을)·왕개마을·용주마을·주젱이마을 등이 있으며, 전남대학교 학생회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언덕 자락이 용주마을·반룡마을을 안고 있어 풍수지리로 볼 때 반룡세주형(盤龍歲株形) 명당이라고 한다.

봉곡마을은 지금의 서쪽 경계인 어린이대공원 전망대 기슭에 있는 가장 오래된 마을로 1985년까지 저불마을이라고 하였는데,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형국이라 하여 봉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500여 년 전 함평이씨 이백춘(李百春)이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왔다고 한다.

북구의 중앙에 위치하며, 1951년 전남대학교가 설립되면서 대학촌으로 발전하였다. 1980년 북구청 개청과 함께 교육·행정의 중심지가 되었고, 용봉천 복개도로 완공으로 남·북 교통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인근에 비엔날레전시관·광주시립미술관·광주민속박물관 등이 있다.

북구청·북구보건소·차량등록민원실·전남대학교·전남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전남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태봉초등학교 등 기관과 재래시장으로 용봉시장이 있다.

문화재로 정지장군환삼(보물 336), 장흥임씨 의복(중요민속자료 112), 십신사지 석불(광주유형문화재 2), 십신사지 석비(광주유형문화재 3), 강진 김해김씨가 상여(광주민속자료 4), 광산노씨 분묘출토명기류(광주민속자료 6), 김봉선유품(광주문화재자료 22), 분청사기전라도명항아리(광주문화재자료 22) 등이 있다.

또 담양서봉사지석탑, 담양서봉사지부도, 영암청풍사지석탑, 광주성 동문 밖 법수, 장성댐수몰지구 고인돌 등이 전남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민속문화로 밭노래·댕기요·시집살이요·연정요 등이 구비전승(口碑傳承) 되고 있고, 운파(雲坡) 김진현(金珍鉉)을 위하여 1933년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제자 이철종(李哲琮) 등이 동료와 스승의 지우(知友) 등 300여 명을 모아 창계한 채국계(採菊契)가 있었으나 1968년 운파 사후에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