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양호 묘

홍양호 묘

[ 洪良浩 墓 ]

요약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묘(墓).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홍양호묘

홍양호묘

지정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5월 17일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산29-3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홍양호(洪良浩:1724∼1802)와 부인 동래정씨의 합장묘이다. 묘 앞에는 비석·상석·향로석·혼유석이 있고 좌우에 촛대석과 동물상이 있다. 묘비는 1832년 세웠는데 아들 의준(義俊)이 찬(撰)하고 손자 경모(敬謀)가 글씨를 썼다. 묘소 바로 아래에 장남 홍낙원의 묘가 있다.

홍양호는 조선시대 실학파의 거두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한사(漢師)이다. 평안도관찰사·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799년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이계집》 37권 외에 《육서경위(六書經緯)》 《해동명장전(海東名將傳)》 《고려대사기(高麗大事記)》 《북새기략(北塞記略)》 《향약절중(鄕約折中)》 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1801년 판중추부사로 물러났다가 이듬해 79세의 나이로 죽었다. 고증학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서예에 능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곡산의 신덕왕후사제구기비(神德王后私第舊基碑)와 수원성(水原城)의 북문루상량문(北門樓上梁文)이 대표적이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역참조항목

용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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