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씨삼강문

나씨삼강문

[ 羅氏三綱門 ]

요약 전라남도 나주시 남문동에 있는 나주나씨(羅州羅氏) 일문의 행적을 기리는 정려(旌閭).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나씨삼강문

나씨삼강문

지정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남문동 15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나평균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나주 중앙로에서 남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작은 길 옆에 자리잡고 있다. 1947년 바로 앞에 도로가 확장되면서 약간 뒤로 이전한 것으로, 1974년 중건하였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다.

나주나씨 일문의 나사침(羅士沈)을 비롯하여 3대에 걸친 2충 2효 4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정려이다. 최초로 정려가 세워진 것은 1544년(중종 39) 나사침에 대해 효자로 생명정(生命旌)이 있으면서부터 이후 3세에 대한 충·열이 추가되어 1779년(정조 3)과 1803년(순조 3)에 각각 충신 나덕명(羅德明)·나덕헌(羅德憲)이 정려를 받아 현재와 같은 충·효·열의 삼강문이 세워졌다. 이밖에도 나득소, 하동정씨(河東鄭氏), 나주나씨, 언양김씨(彦陽金氏) 등이 모셔져 있다.

나사침은 나주 출신으로 자는 중부(仲浮), 호는 금호(錦湖)이다.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가 병으로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봉양함으로써 위기를 넘기고 어머니의 병이 쾌유되었다고 한다. 1614년(광해군 6)에 왕의 명으로 《삼강행실도》가 증보될 때 여기에 기록되었다.

나덕명은 나사침의 큰 아들로 자는 극지, 호는 소포이다.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종성으로 유배되었으나 임진왜란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워 유배에서 풀려났다.

나덕헌은 나사침의 여섯째 아들로 자는 헌지, 호는 장암이다.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웠다. 각각은 나주 금호사에 배향되었다. 나득소는 나사침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 덕현이 죽자 3년 시묘하여 그 효성으로 인조 때 명정이 내렸다.

열녀 하동정씨는 나사침의 넷째 아들인 나덕현의 처로, 정유재란 때 적에게 쫓기는 몸이 되자 강에 투신하여 순절하였다. 열녀 나주나씨는 나사침의 딸로 윤항의 처가 되었다. 정유재란 때 하동정씨와 같이 강에 투신하였으며 선조 때 함께 정려가 내렸다. 열녀 언양김씨는 나사침의 손자 나수소의 처로서 정묘호란 때 친가인 안주성에 피신하여 있다가 성이 함락되자 분신·자살하였다. 이에 인조 때 정려가 내렸다. 열녀 나주나씨는 나사침의 둘째 아들 나덕준의 딸로 임진왜란 때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끊었는데, 선조 때 정려가 내려졌다.

참조항목

나덕헌, 나주시

역참조항목

금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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