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척화비
[ 山淸 斥和碑 ]
- 요약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석.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산청 척화비
지정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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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3년 12월 27일 |
관리단체 | 산청초등학교 |
소재지 |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산청리 295-1번지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
크기 | 높이 135cm, 너비 45cm, 두께 25.5cm |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건립된 것으로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서 승리한 후 백성들에게 통상수교거부정책의 의지를 알리고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서울과 전국의 교통 요충지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산청 척화비를 비롯하여 순흥·옥천·창녕 척화비 등이 있다.
원래 위치는 사람의 왕래가 빈번했던 환아정 뜰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에 의해 두 동강 나서 땅에 묻혔다가 산청초등학교의 교사신축 과정에서 발견되어 현재 위치에 복원되었다.
평평하고 납작한 자연석으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귀부(龜部)를 놓고 그 위에 옥개석(또는 이수)을 씌우지 않은 화강암으로 된 비신을 올렸는데 귀부의 조각이 그리 정교하지는 않다.
비신에는 큰 글씨로 된 ‘洋夷侵犯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과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된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우리 만대자손은 경계하라.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우다.)’이라는 비문이 세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