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성지

통영성지

[ 統營城址 ]

요약 경상남도 통영시 북신동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지.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통영성지

통영성지

지정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일 1991년 12월 23일
관리단체 통영시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북신동 655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크기 면적 156,851㎡, 둘레 약 3,660m, 높이 약 4.7m, 너비 4m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왜적을 방어하고 거주지와 생업지를 갈라 놓는 두 가지 목적으로 1678년(숙종 4)에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축성하였다. 해발 174.2m, 높이 4.7m, 너비 4m, 둘레 약 3,660m이다. 북문 북쪽의 여황산 기슭에서 서문 북쪽의 산기슭까지 여황산 양쪽 등성이 약 1km는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이다.

토성은 산등성이를 이용하여 기단부는 삭토식(削土式)으로 조성하다가 상부로 오면서 석심(石心)을 넣고 흙을 다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았고, 석성은 남문을 위시한 4대문과 2암문(暗門) 양쪽에는 네모 반듯하게 다듬은 무사석으로 협축(夾築)하였다. 나머지 부분은 지세를 따라 사행(蛇行)으로 가면서 자연석으로 바깥쪽을 물림쌓기로 축성하고 안쪽은 흙과 잡석으로 밋밋하게 쌓아올린 내탁공법을 취하였다.

1985년 통제영이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에 성벽과 문루가 훼철되어 지금은 토성의 유지와 석성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옛 통영성에는 동서남북 4대문과 2암문, 그리고 동·서·북쪽에 3포루(鋪樓)가 있었다. 동문은 홍예문(虹霓門)으로 축성할 때 함께 지었는데, 1748년 통제사 장태소(張泰紹)가 신흥문(新興門)이라는 편액을 문루에 걸었고, 1792년 통제사 이윤경(李潤慶)이 고쳐 지으면서 춘생문(春生門)이라 하였다. 서문 역시 홍예문으로 축성 때 함께 지었는데 1790년 통제사 신응주(申應周)가 고쳐 짓고 금숙문(金肅門)이라 하였다. 남문도 홍예문으로 축성시에 지었는데 일명 청남루(淸南樓)라 하였다. 1843년 통제사 허계(許棨)가 중수하였다.

북문은 통영성을 축성할 당시에는 문루가 없었으나 1771년 통제사 원중회(元重會)가 문루를 짓고 이름을 공북루(拱北樓)라 하였는데, 일명 의두문(依斗門)이라고도 하였다. 동·남의 두 암문은 성을 쌓을 때 함께 만들었는데 문루가 없었다. 동암문은 일명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항상 잠가 두었다고 한다. 3포루는 1694년 통제사 목림기(睦林奇)가 세웠다.

통영성을 방비하던 산성중군(山城中軍)이 순찰과 경비를 하던 초소로 때로는 장수가 이곳에서 군사들을 지휘하였기에 장대(將臺)라고도 하였다. 북포루는 여황산 정상에 있었는데 북장대라고도 불렀으며 1993년 2월에 복원되었다. 동포루는 성 동쪽 동피랑 꼭대기에 있어 동장대, 서포루는 성의 서쪽 서피랑 꼭대기에 있어 서장대라고도 하였다.

역참조항목

중앙동, 문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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