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수영성지

경상좌수영성지

[ 慶尙左水營城址 ]

요약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옛 수군의 본영.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상좌수영성지

경상좌수영성지

지정종목 부산광역시 기념물
지정일 1972년 6월 26일
관리단체 수영구
소재지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성로 43 (수영동, 수영동 일원)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크기 면적 8,351㎡, 석벽 높이 4m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둘레 9,190척, 석벽 높이는 4m이다.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이다. 본래 부산포에 있었으나 태종 때 울산광역시 개운포로 옮겼다가 다시 임진왜란 직전에 동래 남촌(수영동)으로 옮겨졌다.

1636년(인조 13) 사천(수영천)의 홍수로 선창의 수로가 매몰되어 선로가 통하지 않자 다시 감만이포로 옮겼다. 그러나 이곳은 왜관과 가까워 군사 기밀이 새어나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1652년(효종 3)부터 1895년(고종 32) 구군제가 폐지될 때까지 수영동에 설치하였다.

의 축조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지금의 것은 1692년(숙종 18)에 좌수사(左水使) 문희성이 개축한 것이다. 4개의 문이 있었는데 동문을 영일문(迎日門), 서문을 호소문(虎嘯門), 남문을 주작문(朱雀門), 북문을 공문(拱辰門)이라 하였고 각 성문에는 문루가 있었다.

그 중 남문의 규모가 가장 컸으며 동문·북문은 각각 이층 건물이었다. 성문은 일정한 시각에 폐문루(閉門樓)·관해루(觀海樓)에 달아둔 북을 울려 그 신호로 여닫았다.

축성에 동원된 인력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현재 남아 있는 돌에 언양·양산 등의 지명이 새겨져 있어, 각지의 민정을 동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3개의 우물, 4곳의 배수구, 옹성(甕城), 치성(雉城), 보루(堡壘)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관리가 소홀하여 대부분 폐허가 되었으나 성벽·남문·홍예문·배수구 등이 남아 있다.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종군, 왜학훈도(倭學訓導)가 있었으며, 7개의 진(鎭)이 소속되어 모두 65척의 전선과 40척의 나룻배가 낙동강의 동쪽에서 경주까지의 전 해상을 방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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