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연서원

예연서원

[ 禮淵書院 ]

요약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에 있는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를 봉안한 조선시대 서원.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예연서원

예연서원

지정종목 대구광역시 기념물
지정일 1995년 5월 12일
관리단체 포산곽씨문중
소재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례길 123 (유가읍, 예연서원)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크기 면적 7,777㎡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7,777㎡이고 포산곽씨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宣武原從) 1등공신인 의병대장 곽재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1618년(광해군 10)에 충현사(忠賢祠)를 건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후 1674년(현종 15)에 당시 현감이었던 유천지(柳千之)가 그 규모를 확장하였다. 이 서원에는 정유재란 때 안음현감(安陰縣監)으로 황석산성(黃石山城)의 수성장(守城將)을 제수받고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곽재우의 재종숙 존재(存齋) 곽준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였는데, 1677년(숙종 3)에 예연서원이라 사액됨으로써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후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가 1982년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 강당, 동재·서재, 고사, 삼문 등이 있다. 사당에는 곽재우와 곽준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고사는 향례(享禮)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며 동재·서재는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수학하던 곳이다.

1977년에는 6·25전쟁으로 소실된 강당과 삼문(三門)을 복원하였고, 1984년에는 사당을 복원하여 옛모습을 찾아 오늘에 이르렀다. 곽재우와 곽준의 신도비(神道碑)도 다시 세웠는데 비각 안에 있는 이 비는 나라의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이 흐른다고 하여 ‘땀나는 신도비’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