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길의 묘

송준길의 묘

[ 宋浚吉의 墓 ]

요약 대전광역시 서구 원정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인 송준길의 묘.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송준길의 묘

송준길의 묘

지정종목 대전광역시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9년 3월 18일
소재지 대전광역시 서구 원정동 산60-5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송준길의 묘는 처음에는 연기(燕岐)에 장사하였다. 그뒤 1676년(숙종 2) 회덕, 1689년 공주로 옮겨졌다가 1700년(숙종 26)에 현재의 자리인 대전광역시 서구 원정동으로 이장하였다. 묘표(墓表)와 묘비는 이장 후에 세워진 것이다. 여기에 문인석 1쌍과 상석(床石)이 있다. 묘비문은 외손인 판서 민진후가 짓고 증손되는 현령 송요좌(宋堯佐)가 써서 1711년에 건립하였다. 묘표의 대좌 윗면은 연꽃으로, 앞면은 당초문, 그리고 뒷면은 험상궂은 귀신의 얼굴을 조각하였다. 당시의 묘석물 양식을 알아볼 수 있는 자료이다.

묘의 전면에 위치한 상석에 붙여진 향로석은 두 마리의 석수가 향로다리를 감싸안은 특이한 형상이다. 차일끈을 매어두는 1조 4개의 차일석 가운데 앞의 두 개는 원숭이 머리 모습이다. 동춘의 묘 아래에는 공조 정랑(正郞)을 지낸 그의 아들 광식의 묘가 있다.

송준길의 자는 명보, 호는 동춘당, 본관은 은진이며 1624년 진사가 되었다가 효종이 즉위하자 집의로 기용되었다. 효종과 같이 북벌 계획 도중 김자점의 밀고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대사헌을 거쳐, 1659년 병조판서로 송시열과 같이 자의대비의 복상 문제로 논란 중 승리하여 우참찬·이조판서가 되었으나 사퇴하였다. 성리학자로서 예학에 밝았고 문장과 글씨에도 능했다.

역참조항목

원정동

카테고리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