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 장군 묘
[ Tomb of General Shin Lip , 申砬 將軍 墓 ]
- 요약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는 조선 선조 때의 무장인 신립(1546∼1592)의 묘. 1986년 9월 7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신립 장군 묘
지정종목 | 경기도 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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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86년 9월 7일 |
관리단체 | 평산신씨종친회 |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대석동길61번길 1-57 (곤지암읍)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
1986년 9월 7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선조 때의 무장인 신립의 묘이다. 신립의 자는 입지(立之), 시호는 충장(忠壯),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22세 때인 1567년(선조 즉위) 무과에 급제하고 1583년에 온성부사(穩城府使)가 되어 북변에 쳐들어온 여진족 니탕개(尼湯芥)를 물리쳤으며, 두만강을 건너 적의 소굴을 소탕하여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고, 평안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한성부(漢城府) 판윤(判尹) 겸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가 되어 빈약한 병력으로 충주의 달천을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쳐서 적과 대결했으나 패하여 탄금대(彈琴臺)에서 몰려오는 적들을 죽이고 강물에 투신 자살하였다. 후일에 조정에서 영의정을 추증하고 충장이라고 시호를 내렸다. 묘역에는 묘비, 무인석(武人石) 및 석등(石燈)이 있다.
이천시 관고동과 사음동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기치미 고개와 이천시 신둔면과 광주시 곤지암읍의 경계를 이루는 넋고개, 이 두 고개는 신립장군에 관한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물밀듯이 북상하여 오자 조정에서는 도순변사 신립 장군과 종사관 김여물을 보내 왜군을 막게 했다. 4월 26일 충주에 다다른 신립은 처음에는 문경새재에서 적을 막으려 했으나 길이 너무 험하여 달래강을 뒤에 두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겨우 수천명의 군사들로서는 조총을 앞세운 왜군에 당할 길이 없어 참패하고 신립과 김여물은 적병 수십 명을 죽이고는 탄금대 위에서 몸을 던져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부하들이 시체를 건져 서울로 오는 도중 ‘장군님’ 하고 부르면 관속에서 ‘오냐’ 하는 대답소리가 났다고 한다.
이천시를 지나 기치미 고개에 이르러 또 ‘장군님’ 하고 부르니까 대답 대신 ‘에헴’ 하는 기침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넋고개에 이르러 또다시 ‘장군님’ 하고 부르니까 그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신립 장군의 넋이 기침을 한 고개라 하여 기치미고개, 장군의 넋이 아주 떠난 고개라 하여 넋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립 장군의 묘는 지금 광주시 곤지암읍에 있는데 거기까지 온 관이 땅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아 그 자리에 묘를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