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교동

석교동

[ Seokgyo-dong , 石橋洞 ]

요약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는 동.
석교동

석교동

위치 대전광역시 중구
면적(㎢) 4.30㎢
문화재 이색영정(보물 1215), 봉소루(대전문화재자료 35), 보문산 마애여래좌상(대전유형문화재 19)
인구(명) 2만 523명(2008)

면적 4.30㎢, 인구 2만  523명(2008)이다. 북쪽·동쪽에 대전천이 감돌아 흘러 문화동동구효동과 자연 경계를 이루고, 남쪽에 구릉이 둘러 있어 동구의 이사동과 접경을 이루며, 서쪽에 보문산(457.3m)의 연봉이 솟아 있어 부사동·대사동과 경계를 이루는 중구의 동남쪽 구릉 지대이다.

공주군 산내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앞 대전천에 돌다리가 있었으므로 돌다리·석교(石橋)라고 하였다. 1895년에 회덕군 외남면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세동(細洞:가늘골)을 병합하여 석교리(石橋里)라고 해서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다. 1940년 대전부 구역 확장으로 대전부에 편입되어 석교정(石橋町)이라고 하다가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석교동으로 개칭하였다. 1963년에 호동(虎洞)·옥계동(玉溪洞)을 통합하고, 1971년 출장소 설치에 따라 중부출장소의 관할 구역이 되었다가, 1977년 구제 실시로 중구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석교동은 법정동인 석교동·옥계동·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계동·호동은 공주군 산내면의 지역인데, 1895년(고종 32) 회덕군 산내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대전군 외남면에 편입되었고, 1935년에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면서 신설된 대덕군의 산내면에 속하였다가 1963년에 대전시 구역 확장에 따라 대전시에 편입되었다.

옥계동은 옛날에 기와를 만들던 곳이므로 기와마루·지와마루·재마루·와리(瓦里) 또는 옥계(玉溪)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외남면의 대성리(大成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옥계리(玉溪里)라고 하다가 1963년에 대전시에 편입되어 옥계동이 되었다.

호동은 범이 살았다는 범바우가 있으므로, 또는 산의 지형이 범이 엎드린 것 같다 하여 범골·호동(虎洞)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모암리(毛岩里:무암)·호암리(虎岩里:범바우)를 병합하여 호동리(虎洞里)라고 하다가 1963년에 대전시에 편입되어 호동이 되었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70%가 되며, 번화가는 중앙부를 관통하는 옥계로변에 있다. 석교파출소·옥계동우편취급소 등의 공공기관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중앙부를 동남으로 관통하는 부사동 사거리-옥계동 옥계로가 있다.

이색영정(보물 1215)은 옥계동 84번지 한산이씨 대종회 안에 있는,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영정으로 가로 78㎝, 세로 146.3㎝인데, 1844년(헌종 10)에 예산의 누산영당의 것을 옮겨 그린 것이다.

봉소루(鳳巢樓:대전문화재자료 35)는 조선 인조 때 장악원 판결사를 지낸 교육자 남분붕(南奮鵬)이 후진을 교육하던 강당으로, 솟을대문인 외삼문 안에 ㄱ자형의 안채가 있고, 그 동쪽에 있는데, 정면에 봉소루 현판이 걸려 있고, 봉소루 뒤에는 남분붕의 유허비가 있다.

보문산 마애여래좌상(대전유형문화재 19)은 보문산성 동쪽 능선 아래 높이 6m, 너비 6m 바위의 남쪽 면에 새긴 불상으로, 전체 높이는 3.2m이다. 나발·육계·삼도가 뚜렷하고 옷주름이나 불상의 윤곽은 간략히 처리하였다. 눈을 가늘게 내리뜨고 앉은 자세가 조금 불안하나 수법은 대체로 우수한 편이고,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교 마을 앞 대전천에 돌다리가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조선 광해군 때 판결사 남분붕이 벼슬을 내놓고 처가인 석교에 와서 봉소루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는데, 낚시를 갔다가 유난히 색깔이 고운 큰 잉어를 잡았으나 차마 먹을 수 없어 도로 놓아 주었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 "여기에서 조금 내려가면 큰 바윗돌이 있으니 그것으로 다리를 놓으면 좋을 것이다." 하므로 다음 날 가 보니 과연 큰 바윗돌들이 있어 다리를 놓았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돌다리(석교)라 하였다고 한다.

석교동 동쪽 대전천 냇가에 대전천을 푸르고 맑게 보존하자는 뜻에서 푸른대전천 시비(詩碑)가 있는데, 시 글은 신용협이 짓고 김한섭이 썼다.

석교동 56번지에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구 지정 보호수:높이 18m, 둘레 3.5m)가 있고, 석교동 61-8번지에 수령 350년 되는 느티나무(동 보호수:높이 15m, 둘레 2.8m), 석교동 61-1번지에 수령 200년 되는 느티나무(동 보호수:높이 15m, 둘레 2.8m)가 있는데, 잎이 고르게 잘 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