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식민지 해방

아프리카의 식민지 해방

아프리카의 독립

아프리카의 독립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적인 반식민지주의 여론이 높아지고 아시아에서 민족독립운동이 성공함에 따라 아프리카 각지의 민족해방운동도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이들의 민족해방운동은 이탈리아 식민지의 처리문제를 둘러싸고 동서 양진영의 대립에 휘말렸으며, 아시아의 신흥제국과 함께 이른바 제3세계의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또 이들의 민족독립운동은 1945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제5회 팬아프리카회의의 영향을 받아 팬아프리카니즘 운동을 구심점(求心點)으로 움직였다. K.은크루마가 그 지도자였으나, 당시의 프랑스령 아프리카 식민지의 정치가도 아프리카 민주집회(民主集會:RDA) 등을 중심으로 행동하였다.

UN의 노력으로 1951년 리비아가 독립함으로써 1922년 이집트가 독립한 이래 30년만에 아프리카의 독립국은 겨우 한 나라가 늘어 5개국이 되었다. 1952년 이집트에서 나세르 등의 쿠데타가 성공, 독립을 이루었다. 그리고 반둥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아프리카회의(1955)를 거쳐, 격렬한 반(反)프랑스 독립투쟁을 벌인 모로코 및 수단이 독립국이 된 것은 1956년의 일이다.

이 대륙의 민족독립 운동의 물결은 먼저 북아프리카에서 고조되었다. 은크루마의 힘으로 1957년 가나가 독립하면서 서부 아프리카에도 민족독립의 물결이 밀어닥치기 시작하였다. 알제리의 독립을 저지하려던 프랑스 제4공화국이 무너지고, 드골의 프랑스 제5공화국이 성립된 1958년에, 기니가 프랑스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여 가나와 함께 전아프리카 해방 운동의 선두에 나섰다. 1958년 말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열린 전아프리카민족회의는 팬아프리카 회의가 결실을 본 것으로서 역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의 민족독립이 절정에 이르러 17개의 신생독립국이 출현함으로써 '아프리카의 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해에 독립한 나라의 대부분은 영국·프랑스·벨기에 등 구종주국(舊宗主國)에 의해서 정치적 독립을 인정받은 것으로 민족주의적인 의욕이나 반식민지주의적인 힘은 강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아프리카 제국은 반식민지주의적이고 급진적인 팬아프리카니즘이 강한 '카사블랑카 그룹'과 그것에 대립하는 '브라자빌 그룹'으로 분열되었다.

이 두 그룹의 구체적인 쟁점(爭點)은 콩고 동란(動亂)을 둘러싸고 반서구적(反西歐的)인 세력과 친서구적(親西歐的)인 세력 중 어느쪽을 지지하는가, 또 알제리 전쟁에서 FLN(민족해방전선)과 드골의 알제리정책 중 어느 것을 지지하느냐 하는 두 가지 문제였다. 따라서 1962년 7월 알제리가 독립하고 1963년 초 콩고 동란이 일단 해결되었기 때문에 1963년 5월 아디스아바바에서 모든 독립국이 수뇌회의를 열어 '아프리카 통일기구헌장'이 조인되고, 아프리카 국가간의 정치적 그룹이나 블록은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