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서번역

한국의 성서번역

한국에 성서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은 1810년 알세스트호(號)의 함장 머레이 맥스웰(Murray Maxwell)이 첨사 조대복에게 건네준 한문성서가 그 효시이다. 그 후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카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ützlaff),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선교사 등에 의해 한문성서가 속속 전해졌다. 이후 성서의 한국어 번역은 만주와 일본에서 각각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만주에 와서 선교사업을 하고 있던 스코틀랜드의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존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가 만주 우장(牛莊)에서 한국인 이응찬 ·백홍준·서상륜 등의 협력을 얻어 1882년에 《루가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 1884년에 《마르코의 복음서》 《마태오의 복음서》, 1885년에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등을 번역 출판하였고, 1887년에 이르러 《예수교전서》라는 이름으로 신약성서가 완역되어 간행되었는데, 이것이 곧 ‘로스 번역(Ross Version)’이라는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수정이 일본 성서공회의 총무인 헨리 루미스(Henry Loomis) 목사의 도움을 얻어 한문에 토를 단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1884년 요코하마[橫濱]에 있는 대영 및 외국 성서공회를 통해 출간했는데, 이것은 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는 1885년에 《신약 마가젼 복음셔 언한국의 성서번역 폰트 이미지 1》를 요코하마의 미국성서공회를 통해 1,000부를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가 한국에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우리말 성서였고, 언더우드는 그것을 1894년에 서울에서 수정·출판한 바 있다. 한국 내에서의 성서 번역사업은 1893년 공선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되어 1900년 신약이 완역되었으나, 미흡한 점이 많아 1904년 개역이 완료되었고, 1906년 다시 수정하여 공인역으로 출판하였다. 이것이 1937년 개역성서가 출간될 때까지 사용되었던 성서였다.

구약성서는 1910년 완역되어 1911년 신약성서와 함께 《성경젼셔》로 합본 및 간행되었다. 이것은 한국에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들어온 지 25년 만에 이루어진 실로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스도교가 구약성서를 번역 완료한 1910년 한국 가톨릭교회는 비로소 한기근 신부가 불가타역을 대본으로 신약성서 중 4복음서만을 번역 완료하여 《한국의 성서번역 폰트 이미지 2성경(四史聖經)》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한기근 신부는 22년에 《사도행전》 《종도행전(宗徒行傳)》을 번역 완료하여 4복음서와 합해서 간행하였다. 신약성서가 완역 출간된 것은 41년의 일이었고, 이 역본이 71년까지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인역본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의 성서번역의 역사에서 가장 뜻있는 일의 하나는 가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가 합동으로 번역 출판한 《공동번역성서》이다. 68년 ‘신구교 구약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번역이 시작된 이 공동번역은 71년 부활절을 기해 신약성서가 출판되었고, 77년 부활절에 때맞추어 구약성서 번역이 끝나 신약과 합본으로 출간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 성서의 사역(私譯)은 57년 8월 그리스도교 잡지인 《기독교계》 창간호에 실린 박창환의 《에베소서》 사역이 그 첫 시도였다.

그 후 《빌립보서》 《골로새서》가 사역되었다. 동지 제4호에 김정준의 《시편》 사역이 몇 편 실렸다. 61년에는 복음동지회에 의해 《마태복음》이 출판되었으며, 순수한 국내 성서학자들에 의한 성서번역이 마침내 본격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