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고전기 폴리스 사회쇠퇴

그리스의 고전기 폴리스 사회쇠퇴

오늘날에 전해진 그리스 고전은 문학 ·사학 ·철학을 막론하고 대부분 아테네 시민이나 그 거류인에 의해 씌어진 것인데, 그 연대는 대부분 BC 431년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발발 이후에 속한다. 아테네인은 이 27년간의 장기 전쟁 속에서도 그들의 연극 창작활동을 계속하였다. 민회나 민중재판소에서의 변론자유를 배경으로 나온 정치연설 ·법정연설 등 현존 작품도 대부분 BC 4세기에 속하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적 ·정치학적 작품도 대개 이 무렵에 씌어졌다. 따라서 현존 고전에 관한 한, BC 5세기 말 이후가 오히려 그리스의 최성기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의 폴리스 사회 내부에는 폴리스 본질의 쇠퇴를 의미하는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실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폴리스 사회 붕괴의 발단이 된 그리스사상 일대 비극이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육군국과 해군국, 귀족제와 민주제, 농업국과 상업국으로서의 특성을 각각 지니고 있어, 전쟁은 처음에는 이 양대 폴리스 간의 패권다툼으로 시작되었으나, 이것은 곧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델로스 동맹의 싸움으로 발전됨으로써 전쟁의 피해도 그리스 전국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스파르타는 마침내 자기 체제의 유지를 위해 민족적인 배신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여 페르시아 제국의 자금을 끌어들여 해군을 건설하고 아테네를 격파하였다. 이로 인해 아테네가 항복하고, 델로스 동맹도 아울러 붕괴되고 말았다. 전쟁의 결과 먼저 아테네의 피해는 극히 참담하였다. 무역은 마비되고, 민주제는 전복되었으며, 질병으로 인구마저 감소되었다. 그리고 성벽의 파괴, 모든 해외 소유지의 포기, 대부분의 해군력 폐기 등을 강요당함으로써 아테네는 이제 스파르타의 예속국으로 전락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전승국 스파르타는 한때 그리스의 패자(覇者)가 되어 전성을 누렸으나, 전쟁의 후유증과 농업경제체제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점, 그리고 군국적 보수주의 등으로 마침내 동맹국 내의 반발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것이 코린토스 ·테베 ·아테네 ·아르고스 등이 페르시아의 후원을 얻어 동맹하여 스파르타의 패권에 대항한 이른바 코린토스 전쟁(BC 395~BC 386년)이다.

이에 스파르타는 BC 386년 페르시아와 이른바 ‘안탈키다스 화약’을 맺고 페르시아 대왕의 힘을 빌려 이 전쟁을 종결시켰다. 그리고 그 대가로 소아시아의 그리스 식민시를 페르시아령(領)으로 넘겨 주는 반민족 행위를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스파르타에 대한 그리스인의 반감이 최고조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가 각 폴리스에 대한 간섭을 늦추지 않자, 이번에는 지난날의 동맹국이었던 테베가 다시 스파르타에 도전하여 에파미논다스와 펠로피다스의 지휘하에 BC 371년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불패(不敗)를 자랑하던 스파르타 육군을 격파하고 대승하였다. 그러나 테베도 BC 362년 에파미논다스의 죽음과 더불어 쇠퇴함으로써 이후 폴리스 상호간의 분열과 항쟁이 계속되어 다시 전(全)폴리스의 단결을 시도할 기력을 잃고 말았다.

또, 이 같은 폴리스 사이의 분열과 항쟁 속에서 중견시민이 몰락하고 빈민과 노예가 늘어나 용병(傭兵) 사용이 성해짐으로써, 시민 개병(皆兵)을 원칙으로 하던 폴리스 사회는 내부로부터 해체되어 가기 시작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이 풍부한 자금으로 그리스인 정치가를 매수하여 폴리스 상호간의 분립과 항쟁을 조장시킨 것도 정세를 더욱 악화시킨 또다른 요인이었다. BC 359년 그리스 북방의 마케도니아에서는 필리포스 2세(재위 BC 359∼BC 336)가 즉위하면서 국력을 크게 신장시켜 그리스로 밀고 내려왔는데, 이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그리스 본토에서는 마케도니아에 대한 항전을 부르짖는 데모스테네스파(派)와 마케도니아에 동조하여 페르시아를 토벌하기 위한 동맹을 결성하자는 이소크라테스의 초(超)폴리스적 주장을 내세운 파로 갈려 있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군이 BC 346년에 일단 중부 그리스로 진공하여 들어오자 데모스테네스가 중심이 되어 마침내 아테네 ·테베의 반(反)마케도니아 동맹을 성립시켜 필리포스 2세의 침략군을 맞이하였지만, BC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대패하고 자유와 독립의 폴리스 세계는 이로써 끝나고 말았다.

즉 필리포스 2세의 그리스 지배는 여기서 시작되었고, 폴리스는 이후 독립된 정치단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이제 필리포스 2세의 힘으로 조직된 헬라스 동맹(일명 코린토스 동맹)에 따른 스파르타를 제외한 본토의 폴리스가 차례로 통일됨으로써 고대그리스 시대는 그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