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소비에트정권 수립

러시아의 소비에트정권 수립

모스크바 붉은광장

모스크바 붉은광장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패배로 인해 빈곤에 찌든 인민들의 시위와 파업이 계속되었다. 1917년 3월혁명(구력 2월)이 일어나 니콜라이 2세를 축출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임시정부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자, 이에 대항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의 대표들로 구성된 볼셰비키혁명 세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마침내 1917년 11월 7일(러시아 구력으로 10월 25일)에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파가 임시정부를 전복시키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성공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레닌은 혁명 직후, 주요 산업 및 은행의 국유화, 신분제 폐지, 인민재판소 설치, 의회의 해산 등과 같은 혁명적 입법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신생 소비에트 정권은 부르주아와 지주 등 우익 백군(白軍), 즉 반(反)혁명세력의 봉기와 연합국(영국·프랑스·미국·일본 등)의 개입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레닌은 모든 기업의 국유화·노동의무제·곡물징발제·식량배급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전시(戰時) 공산주의’ 정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소비에트 적군(赤軍)을 동원하여 내란을 종식시켰다.

전시 공산주의 정책은 농민의 반발과 경제복구의 실패 등으로 오히려 신생 소비에트 정권을 위기상황으로 몰았다. 이에 1921년 레닌은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lan:NEP)’을 채택하면서, 자유농 인정·농산물 판매 허용·사기업 인정 등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였다. 이러한 신경제정책으로 경제가 신속히 복구되었고 인민의 생활수준도 다소 향상되었다. 한편 레닌은 고전적인 마르크스의 명제에서 벗어나 러시아 한 나라만이라도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일국 사회주의론’을 전개하였다. 이는 러시아혁명 후 주변국가에서 기대했던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소비에트 정권의 안정 자체가 시급한 현실에 대한 전략적 대응으로서 나온 이념 수정이었다.

레닌의 신경제정책과 일국 사회주의론은 격렬한 이념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당내 갈등의 와중에 22년 스탈린은 당 총서기로 임명되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캅카스(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아르메니아)로 이루어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소련)’이 탄생되었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과 혁명을 거치는 동안 신생 소비에트 정권은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서부지역의 상당한 영토를 상실하였다. 이때 상실한 영토는 1939~1945년에 소련이 회복하는 영토보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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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크렘린 러시아 모스크바. 모스크바강을 따라 1변이 약 700m의 삼각형을 이루고, 높이 9∼20m, 두께 4∼6m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