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

슈농소성

슈농소성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12월 2일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파를 추방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어 나폴레옹 3세(재위 1852∼70)라 칭하였다. 이 제2제정기(帝政期)는 해외발전의 시대에 해당하는데, 크림전쟁(1853∼56)으로 러시아를 압도하고, 중국(당시는 淸) 원정(1857∼60), 수에즈 운하의 건설(1859∼69), 니스·사부아(사보이)의 병합(1860) 등이 이루어졌다. 또한 파리시의 건설이 시작되었고, 공업 생산은 금속공업에 중점을 두었으며 산업혁명은 완성기에 들어갔다. 철도망은 널리 보급되었고 만국박람회(1855∼67)를 개최하였다. 초기의 전제제정기(專制帝政期:1852∼67)는 황제의 실질적인 독재시기로, 반대파의 활동은 가혹하게 억압되었다.

1860년부터는 자유주의적 개혁운동이 강해졌고, 자유제정기(自由帝政期:1867∼70)에는 의회제도를 비롯한 자유주의적 개혁이 이루어졌으며 자유무역제도가 채택되었다. 이와 함께 반대세력의 정치활동과 노동운동도 부활되고 현실주의·자유주의 문학이 문단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부르주아 체제의 퇴폐적 현상도 심화되었다. 1867년의 경제공황으로 혼란이 가중되자, 기회를 노리던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에스파냐 왕위계승문제를 계기로 프로이센-프랑스전쟁(1870∼1871)을 유발시켰다. 이미 전열을 정비한 프로이센군(軍)은 몰트케의 신속한 작전으로 곧 프랑스를 침공, 나폴레옹 3세는 세당에서 포로가 되었고 패보(敗報)를 들은 파리 시민들은 혁명을 일으켜 공화제를 선언하였다(제3공화정).

그 결과 임시 국방정부가 조직되어 파리를 포위한 프로이센군에게 4개월 동안 저항하였으나 마침내 굴복하고 티에르의 임시정부는 강화조약에 조인하였다(1871). 그 동안 국방정부의 파리 국민군 무장해제 시도를 계기로 ‘파리코뮌’의 혁명정권이 성립되었으나, 프로이센과 정부군의 공격으로 2개월 만에 붕괴되고, 1871년 8월에는 급진 공화파의 레온 강베타와 타협이 이루어져 티에르(1871∼73)가 대통령이 되었다. 1873년 마크마옹(1873∼79)이 제2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왕정복고의 조짐이 보였다. 공화파와 왕당파 간의 대립 속에서 1875년까지 과도정권이 이어지다가, 1875년 대통령제 공화정이 수립되면서 프랑스는 100년에 걸친 혁명 끝에 공화제가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제3공화정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지만, 독일 비스마르크(Bismarck)의 허락 하에 기존 식민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베트남, 마다가스카르, 북서아프리카 등에서 식민지 팽창 정책을 추진하면서 영국과 충돌을 일으켰다. 하지만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후퇴하면서 진정되었다. 1890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실각 된 이후 독일이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1894년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이어서 영국·프랑스 협상(1904), 3국협상(三國協商:1907)을 체결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3국동맹(三國同盟:82)에 대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