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봉

문예봉

[ 文藝峰 ]

요약 남한 출신으로 월북한 북한 인민배우. 《춘향전》, 《인생항로》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한국적 미모와 연기력으로 해방 직전까지 ‘3천만의 연인’이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월북 후 《내고향》, 《빨치산 처녀》등 수십 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1952년 북한 최초로 공훈배우가 되었다.
출생-사망 1917 ~ 1999
활동분야 영화
출생지 서울
주요수상 북한 국기훈장 제1급
주요작품 《임자없는 나룻배》(1932), 《수업료》(1940)

서울 출생. 1932년 16세의 나이로 이규환(李圭煥) 감독에게 발탁되어 《임자없는 나룻배》로 데뷔하였다. 그 뒤부터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과 《인생항로》 《수선화》 《나그네》 등에서 주연을 맡으며 한국적 미모와 연기력으로 해방 직전까지 ‘3천만의 연인’이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날렸다. 해방 후 극작가인 남편 임선규(林仙圭)와 좌익연극계에 가담하다 1948년 3월 남편과 함께 월북하였다.

1949년부터 북한의 첫 극영화 《내고향》과 《빨치산 처녀》 《금강산 처녀》 등 수십 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1952년 북한 최초로 공훈배우가 되었다. 김일성의 특별배려를 받으며 연극의 김선초, 무용의 최승희와 함께 북한 공연예술을 이끄는 트로이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연기가 너무 감상적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다 1965년 《조선영화》 4월호에 나운규를 길이 빛낼 천재라고 쓴 글이 문제가 되어 안주의 협동농장으로 숙청되었다. 1980년에 다시 복귀하여 《춘향전》에서 대부인 역을 맡았고 《생명수》 《은비녀》 등에 출연하며 1982년 인민배우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을 받았다. 1980년대 중반에는 평양 보통강 구역의 고급주택을 하사받았고, 1988년 8월에는 남북한학생회담의 북측 참관인사로도 활동하였다. 1997년 80회 생일에 김정일이 생일상을 전달하였다고도 한다.

참조항목

수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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