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에니전쟁

포에니전쟁

[ Punic Wars ]

요약 로마와 페니키아의 식민시(植民市) 카르타고와의 전쟁.
한니발석상

한니발석상

포에니라는 말은 라틴어로 '페니키아인'을 가리킨다.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둘러싸고 BC 3세기 중엽에서 BC 2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전후(前後) 3차에 걸쳐 있었던 고대의 세계적 전쟁이다. 이른바 동서 결전(決戰)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제1차 포에니전쟁

시칠리아를 무대로 한 전장(戰場)이다. 시칠리아북동단(北東端)의 그리스 식민시 메시나를 에워싼 싸움이 발단이 되어 로마군은 시칠리아 남안(南岸)의 아크라가스를 점령한 후, 새로 강력한 해군력을 길러 BC 260년 시칠리아 북안의 해전(海戰)에서 카르타고 해군에게 대승을 거두었으며, BC 256년 로마는 대함대를 거느리고 아프리카로 원정하였으나 크게 패하였다.

전장은 다시 시칠리아 서부로 옮겨져 시칠리아 서단(西端) 아이가테스해전에서 승리하여 카르타고를 무조건 항복시켰다. 이 전쟁의 결과로 로마는 거액의 배상금을 얻는 한편, 카르타고 세력은 시칠리아에서 일소되어 시칠리아는 로마의 속주(屬州:프로빈키아, 해외속주의 시작)가 되었다. 이어 로마는 사르데냐·코르시카를 제2의 속주로 하였다.

포에니전쟁 본문 이미지 1

제2차 포에니전쟁

'한니발전쟁'이라고도 한다. 용병의 반란을 진압한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카르 바르카스는 이베리아반도의 경영에 착수하였고, 그의 사위 하스도르바르와 아들 한니발이 뒤를 이어 세력을 기른 후 한니발이 로마의 동맹시(同盟市) 사군툼을 공격, BC 218년 다시 로마와의 전쟁에 들어갔다. 대군을 거느린 한니발은 남프랑스를 석권한 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침입, 반도의 각지에서 로마군을 격파하였다(티키누스 전투). 특히 BC 216년 8월 2일 남이탈리아의 칸나에전투에서는 용병(用兵)의 묘(妙)를 발휘한 한니발이 로마군을 포위·섬멸하였으나, 반도에 있는 로마의 동맹시는 로마에서 이반(離反)하지 않았다.카르타고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 및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동맹을 맺었으나, 로마는 이를 게릴라 전법으로 교묘히 저지하여 전선(戰線)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끝내 굽히지 않고 마침내 퇴세(退勢)를 만회한 로마군은 BC 206년 카르타고군의 거점인 이베리아반도를 완전히 평정한 대(大)스키피오(아프리카누스)의 인솔하에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BC 202년 자마전투에서 한니발군을 격파, 두 번째의 전쟁도 로마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카르타고는 해외영토를 모두 잃고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편 한니발은 동방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3세 곁으로 도망했다가 다시 비티니아왕에게 의탁하여 재기(再起)를 꾀하였으나 허사로 끝났다.

포에니전쟁 본문 이미지 2

제3차 포에니전쟁

카르타고의 숨통을 완전히 끊은 전쟁이다. 카르타고와 그 이웃 나라인 누미디아의 마시니사전투에 끼어든 로마가 BC 149년 전단(戰端)을 열어 소(小)스키피오가 인솔하는 로마군이 마침내 카르타고를 포위하여 이를 철저히 파괴함으로써 3차에 걸친 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카르타고의 옛 땅은 아프리카라는 이름으로 속주가 되었다.

200년 이상에 걸친 전쟁의 범위가 서지중해 전역에 걸쳤을 뿐만 아니라 제2차 포에니전쟁 때의 카르타고와 동방 마케도니아의 동맹이 보여주듯이, 이 전쟁은 고대에 있어서 세계대전의 양상을 띠었다. 따라서 민족적 시련을 극복한 로마가 일개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세계 전체에 걸친 세계제국으로 발전하는 전환점이 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