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학파

회의학파

[ skeptikoi , 懷疑學派 ]

요약 기원전 3세기 무렵에 나타난 그리스 철학의 한 흐름.
그리스철학 계통도

그리스철학 계통도

보편타당한 절대적 진리의 존재나 그것을 인식할 가능성에 관해 부정하거나 회의하는 태도를 특징으로 하는 철학의 한 흐름을 뜻한다. 넓은 의미에서 회의학파(scepticus)는 이러한 회의주의(scepticismus)에 바탕을 둔 철학의 모든 경향과 사상가들을 통칭하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3세기 무렵까지 피론(pyrrhon, 기원전 360?~270?)을 중심으로 나타나서 '피론주의(Pyrrhonismus)'라고도 불리는 그리스 철학의 한 흐름을 가리킨다.

회의학파의 역사와 구성

그리스 회의학파는 크게 전기 회의학파와 중기 회의학파, 후기 회의학파로 나뉜다. 고(古) 회의학파라고도 불리는 전기 회의학파는 피론과 티몬(Timon, 기원전 325?~235?)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엘리스(Elis) 출신의 피론은 감각은 쉽게 속고 이성은 쉽게 욕망에 굴복하므로 인간의 인식을 절대적이고 확실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기 회의학파는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Academia)에서 활동하던 아르케실라오스(Arkesilaos, 기원전 316?~241?)와 카르네아데스(Karneades, 기원전 214~129)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서 '아카데미 회의학파(Academic Skeptics)'라고도 한다. 이들은 인간 지식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을 강조하며 스토아학파의 논증이 독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의 사상은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기원전 106〜43)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 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후기 회의학파는 아이네시데모스(Ainesidemos, 기원전 1세기), 아그리파스(Agrippas, 기원후 1세기),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kus, 기원후 160?~210?) 등을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피론의 회의주의 철학을 체계화해서 '신(新) 피론주의(neo-Pyrrhonism)'라고도 한다. 아이네시데모스는 8권으로 된 《피론주의 원리(Pyrrhoneioi logoi)》를 썼으며, 판단을 멈추고 의심해야 할 '에포케(epoke)'의 이유를 10개조의 비유로 정리했다. 아그리파스도 그 이유를 5개의 조항으로 정리해서 나타냈다. 이들의 저작은 전해지지 않지만,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쓴 《피론주의 개요(Pyrrhoneioi hypotyposeis)》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 책은 그리스 회의학파의 저술들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전해지는데, 1562년 라틴어로 옮겨져 제네바에서 출판되면서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흄(David Hume, 1711~1776),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등의 근대 철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회의학파의 특징

그리스 회의학파는 스토아학파・에피쿠로스학파와 마찬가지로 '행복(eudaimonia)'의 실현을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그에 도달하기 위해 혼란과 동요에서 벗어난 평정한 상태인 '아타락시아(ataraxia)'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타락시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어떤 대상에 관해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독단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판단을 멈추고 진리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삼가는 '에포케'를 아타락시아에 이르기 위한 길로 강조했다.

그렇지만 회의학파는 인간이 결코 사물의 본질에 관한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보는 불가지론(不可知論)도 철학적 독단론과 마찬가지로 비판했다.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는 판단 자체도 또 다른 독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회의학파는 어떠한 판단이나 믿음도 중지하고, 영원히 ‘회의(skepsis)’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인간의 인식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진리에 관한 어떤 주장에도 반드시 반대 주장이 성립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회의학파는 인간의 인식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5개나 10개의 조항들로 정리해서 나타냈다. 예컨대 3세기에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Bíoi kai gnômai tôn en filosofíai eudokimēsántōn)》를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os)에 따르면, 피론은 다음과 같은 10가지 이유를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① 모든 생명체는 쾌락과 고통, 손해와 이익에 관해 다른 관점을 가지므로,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② 모든 사람은 신체 구조가 다르므로,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③ 사람의 감각기관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으므로, 감각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④ 사람의 상황과 성향은 다 다르므로, 기분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⑤ 사람은 민족마다 관습과 법, 전통이 다르므로, 민족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⑥ 어떠한 것도 순수한 형태로 현상하지 않으므로, 주변 환경과의 결합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⑦ 어떠한 것이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므로, 거리와 위치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⑧ 어떠한 것이나 양과 질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므로, 양과 질의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⑨ 어떤 것이나 현상의 빈도가 다르므로, 얼마나 자주 되풀이되고 지속되는지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⑩ 어떤 것이나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 안에서 상대적으로만 표상될 뿐이므로, 기준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서로 다르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