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론

화론

[ 畵論 ]

요약 중국 ·한국의 회화에 관한 논평·이론 중에서 특히 근대 이전에 성립된 전통적 동양화 이론.

중국의 화론은 전국시대 말기에 싹터 한대(漢代)까지는 단편적인 것이 많았다. 위진시대(魏晉時代)로 접어들자 당시 흥륭(興隆)한 문인화가들에 의한 본격적인 화론이 나타났으며, 고개지(顧愷之)의 《논화(論畵)》 등이 그 최고의 예이다. 남북조시대에는 산수화론이 창시되었으며, 특히 사혁(謝赫)의 《고화품록(古畵品錄)》은 회화품평의 원칙이라고도 일컬을 만한 육법(六法)을 제시한 저술이다.

당대에는 장언원(張彦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畵記)》와 같은 화사(畵史) ·화전(畵傳)이 나왔다. 송대는 중국화론의 황금시대로 회화 품평에 황휴복(黃休復)의 《익주명화록(益州名畵錄)》(1006), 화사에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誌)》(1080?), 산수화론에 곽희(郭熙)의 《임천고치(林泉高致)》, 저록(著錄)에 휘종(徽宗)의 명으로 편찬된 《선화화보(宣和畵譜)》(1120) 등 뛰어난 저서가 많다.

그 밖에 문인들에 의한 제찬(題贊)이나 작품감상의 집록(集錄), 화보(畵譜)의 편찬 등이 성행하였는데, 이에는 미불(米芾)의 《화사(畵史)》, 송백인(宋伯仁)의 《매화희신보(梅花喜神譜)》 등이 있다. 원대에는 화사에 하문언(夏文彦)의 《도회보감(圖繪寶鑑)》(1365), 회화품평에 탕후(湯垕)의 《화감(畵鑑)》 등이 알려졌다.

명 ·청대에 이르러서는 방대한 분량의 갖가지 화론이 쓰였지만 뛰어난 저술은 많지 않다. 그 중에서 남종화(南宗畵)의 우월성을 내세운 동기창(董其昌)의 《화안(畵眼)》, 전통적 화보의 결론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만한 왕개(王槩)의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화론의 모든종류를 집대성한 강희제(康熙帝) 칙찬(勅撰)의 《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1708) 등이 저명한 책들이다.

한편, 한국의 화론은 중국 화론의 영향을 받아 그것을 소개하고 보완 ·주석한 것이 대부분이며, 중국의 화론을 한국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여 한국의 회화작품이나 작가열전(作家列傳) 등에 인용 ·삽입해 놓은 것이 대종을 이루었다. 그나마 역대의 왕조실록 등에 단편적으로 기록이 나타나는 서화 관계 부분과 몇몇 개인 저술에 등장하는 화론 등이 대부분이어서 중국에 비해 미약하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화론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그리고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산견(散見)되는 사실적(史實的) 기록 외에,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안평대군의 《비해당집(匪懈堂集)》, 신숙주의 《보한재집(保閑齋集)》, 김안로(金安老)의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김상헌(金尙憲)의 《청음집(淸陰集)》, 허목(許穆)의 《기언(記言)》, 강세황(姜世晃)의 《표암집(豹庵集)》, 신위(申緯)의 《경수당집(警脩堂集)》,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金陵集)》, 윤휴(尹鑴)의 《백호전서(白虎全書)》, 윤두서(尹斗緖)의 《화단(畵斷)》, 김정희(金正喜)의 《추사집》,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사(壺山外史)》, 그리고 《경국대전》 등의 저록(著錄)에서 비교적 폭넓은 서화의 이론들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