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화의 기원

남종화의 기원

이러한 구분은 동기창과 동향인으로 친교가 있었던 의 《화설(畵說)》에서도 대체적인 요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작성한 남종화의 계보에 의하면, 남종화는 그 비조(鼻祖)를 당나라의 문인화가이자 시인이었던 왕유(王維)로 삼고, 이후 당말(唐末)의 장로(張路), 오대(五代) 및 송나라 때의 (荊浩)·(關同)·(董源)·(巨然)·(郭忠恕)·미가부자(米家父子:米芾과 米友仁)를 거쳐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黃公望·倪瓚·吳鎭·王蒙)로 이어지며, 명나라 때의 (沈周)·(文徵明) 같은 오파(吳派)의 문인화가들도 이 계보에 속한다.

한편 북종화의 계보는 당대(唐代) (李思訓) 부자(父子)의 착색산수(著色山水)로부터 송(宋)나라의 조간(趙幹)·조백구(趙伯駒)·조백숙(趙伯驌)으로 전해져 (馬遠)·(夏珪)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남·북종론을 제창했던 동기창은 예림백세지사(藝林百世之師)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문예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니만큼 명시적(明示的)은 아니었지만, 남종화를 존숭하고 북종화를 경시하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이것은 남종화의 정통성을 결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명·청대(明淸代)의 중국에서는 남종화의 전성기를 맞았다.

남북이종론(南北二宗論) 자체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으나 남·북이라는 용어에 따른 이의가 적지 않았다. 남 ·북이란 화남(華南)·화북(華北) 등 화가들의 출신지에 따른 구분이라는 설이 계속 나왔다. 그러나 이미 명말 청초(明末淸初)의 심호(沈顥)도 그의 저서 《화진(畵塵)》에서 “선(禪)과 화(畵)는 함께 남북(南北)이 있다”라고 밝힌 바 있듯이 선가(禪家)에서의 남북구분(南北區分)에 수반되는 개념과 같은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회화에서의 남북 분종(分宗)의 주안점은 순전히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의 의경(意境)에 입각한 것으로, 북종화는 외형묘사를 위주로 한 사실적(寫實的) 영향을 지향하는 데 반하여, 남종화는 작가의 내적 심경(內的心境), 즉 사의표출(寫意表出)을 의도한다고 볼 수 있다.

참조항목

, , , , ,

카테고리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