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용

홍사용

[ 洪思容 ]

요약 시인. 신극운동(新劇運動)에도 참여하여 연극단체 토월회(土月會)를 이끌었고 희곡도 썼다. 작품으로 《나는 왕이로소이다》, 《봄은 가더이다》 등이 있다.
출생-사망 1900.5.17 ~ 1947.1.7
노작(露雀)
활동분야 문학
출생지 수원(水原)
주요작품 《나는 왕이로소이다》,《봄은 가더이다》

호 노작(露雀). 수원(水原: 현재의 화성시)에서 출생하였다. 휘문의숙(徽文義塾)을 졸업하고 1922년 나도향(羅稻香)·현진건(玄鎭健) 등과 동인지 《백조(白潮)》를 창간, 《백조는 흐르는데 별 하나 나 하나》, 《나는 왕이로소이다》 등 향토적이며 감상적인 서정시를 발표했다.

신극운동(新劇運動)에도 참여하여 연극단체 토월회(土月會)를 이끌었고 희곡도 썼다. 시·수필·희곡 등 발표 작품은 많지만 책으로 되어 나온 것은 없고 《백조》의 간행과 극단운영에 가산을 탕진한 후에는 가난 속에서 살다가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는 그 밖에 《꿈이면은》, 《봄은 가더이다》 등의 시작품이 알려져 있다. 시인의 고향인 경기도 화성시와 후손의 후원으로 2002년 노작문학상이 제정되었다.

홍사용 연보
출생 1900.5.17~ 사망 1947.1.7

1900

음력 5월 17일 경기도에서 외아들로 출생.

1907

휘문의숙 입학 전까지 사숙에서 한학을 공부.

1912

원효준과 결혼.

1916

휘문의숙에 입학. 서울 의주로에서 하숙.

1919

휘문고등보통학교졸업. 3.1운동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가 6월에 낙향.
정지현,백과 함께 합동 수필 <청산백운>과 시 <푸른 언덕 가으로>를 씀.

1920

월탄, 정백 등과 함께 서광사에 관여하면서 동사에서 <문우>를 창간하고, 이 잡지에 <크다란 집의 찬 밤> 발표.

1921

문예지 <백조>와 사상지 <흑조> 창간을 준비.

1924

토월회의 문예부장직을 역임.
<회색의 꿈> 연출, 창작 희곡 <산유화> 집필.

1927

박진, 이소연 등과 함께 극단 산유화회를 조직.
희곡 <향토심>과 번역 작품 <소나기>를 연출.

1929

희곡 <제석>을 <불교> 56호에 발표.

1939

희곡 <금옥균전>썼으나 총독부의 검역에 걸린 후 절필함.

1947

1월 7일 폐환으로 마포구 공덕동에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