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옥

최양옥

[ 崔養玉 ]

요약 한말의 독립운동가.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 횡성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후 만주로 망명하여 군자금 모금을 위해 활동했다. 1927년 북만주에 독립군 비행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그 기금 마련을 위해 서울로 잠입했다. 망우리에서 춘천으로 가는 일본 우편물수송차를 습격하여 많은 돈을 탈취했으나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최양옥선생 묘역

최양옥선생 묘역

출생-사망 1893 ~ ?
본관 강릉
추강(秋岡)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강원 횡성(橫城)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2)

호 추강(秋岡). 강원도 횡성(橫城)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서울 중동(中東)중학을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동지들을 규합, 3월 11일 횡성읍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후 만주로 망명, 이동녕(李東寧)·박은식(朴殷植)으로부터 군자금모금의 지시를 받고, 서울에 잠입하여 신덕영(申德永)과 함께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로 보냈다.

그 해 11월 신덕영·노기준(盧基準) 등과 전라남도 담양(潭陽)·곡성(谷城) 등지에서 군자금 모금을 계속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광주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26년 출감 후 다시 만주로 망명, 1927년 산시성[山西省] 타이위안[太原]에서 안창남(安昌男)·이용화(李容華)·김정련(金正連) 등과 북만주에 독립군 비행학교 설립계획을 세우고, 그 기금모금(基金募金)을 위하여 김정련·이선구(李善九) 등과 함께 서울로 잠입하였다.

망우리(忘憂里)에서 춘천으로 가는 일본 우편물수송차를 습격하여 많은 돈을 탈취하였고, 도피 중 체포되어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만기 출옥하였다. 광복 후 서울형무소 서무과장·인천형무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역참조항목

안창남, 신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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