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산두

최산두

[ 崔山斗 ]

요약 조선 전기의 문신. 초계 최씨의 시조. 1513년 병과로 급제하여 수찬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후에 사간, 지평을 거쳐 사인(舍人)이 되었는데 1519년 기묘사화로 동복에 유배되었다. 1533년 풀려났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문장에 뛰어나 윤구, 유성춘 등과 함께 호남의 3걸(傑)로 알려졌다.
신재 최산두선생유허비

신재 최산두선생유허비

출생-사망 1483 ~ ?

초계최씨(草溪崔氏)의 시조. 경앙(景仰). 신재(新齋). 1504년(연산군 10) 생원(生員)이 되고 1513년(중종 8)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로 급제, 수찬(修撰)을 지낸 뒤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후에 사간(司諫) ·지평(持平)을 거쳐 사인(舍人)이 되었는데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로 동복(同福:和順)에 유배되었다가 1533년 풀려난 뒤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문장에 뛰어나 윤구(尹衢) ·유성춘(柳成春) 등과 함께 호남의 3걸(傑)로 알려졌다. 동복의 도원서원(道源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