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산두 묘

최산두 묘

[ 崔山斗墓 ]

요약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부저리 저곡마을에 있는 최산두(崔山斗)의 묘.
최산두 묘

최산두 묘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3~?)선생의 묘이다. 지름 6.5m, 높이 1.7m 크기의 원형분으로 저곡마을과 부현마을 사이의 산 중턱에 있다. 무덤 앞에 사람의 형상을 한 돌(석인상,石人像)과 망부석이 세워져 있으며 비석 앞면에 '의정부사인신재 최선생산두지묘 영인이천서씨부(議政府舍人新齋 崔先生山斗之墓 令人利川徐氏羅)'라고 새겨져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최산두는 1504년(연산군 10)에 진사(進士)가 된 이후 1513(중종 8)에 별시문과(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홍문관 수찬(弘文館 修撰), 이조정랑(吏曹正郞) 등을 지낸 인물이다.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루되어 동복(同福)에 유배되었고, 이후 동복의 도원서원(道源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장에 뛰어나 윤구(尹衢), 유성춘(柳成春) 등과 함께 호남의 3걸(傑)로 알려졌으며 저서로는 《신재집(新齋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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