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

정지

[ 鄭地 ]

요약 고려시대의 무신. 순천, 낙안, 영광, 광주, 담양, 남원, 남해 관음포에서 왜적을 대파했고 요동 정벌 때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동조했다.
정지장군예장석묘

정지장군예장석묘

출생-사망 1347 ~ 1391
본관 하동(河東)
별칭 초명 준제, 시호 경렬
활동분야 군사

본관 하동(河東). 초명 준제(准提). 시호 경렬(景烈). 1374년(공민왕 23) 중랑장(中郞將)으로서 왜적을 평정할 계책을 왕에게 올려 전라도안무사(按撫使)가 되고, 1377년(우왕 3) 순천도병마사(順天道兵馬使)가 되어 순천·낙안(樂安) 등에 침입한 왜적을 토벌하였다.

다음해 영광·광주(光州)·담양 등에 침입한 왜구를 소탕하여 전라도순문사(巡問使)가 되고, 1380년 원수(元帥)가 되어 배극렴(裵克廉) 등과 사근내역(沙斤乃驛)에서 왜적과 싸웠으나 패하였다.

1381년 밀직(密直)으로 해도원수(海道元帥)가 되어, 이듬해 남원(南原)에 침입한 왜적을 격퇴하고, 1383년 남해 관음포로 쳐들어온 왜적을 대파하였고 문하부지사(門下府知事)로서 해도도원수, 양광·전라·경상·강릉도 도지휘처치사(都指揮處置使)가 되고, 1384년(우왕 10) 문하평리(門下評理)를 지냈다.

1388년 요동(遼東)정벌 때 안주도도원수(安州道都元帥)로 출전했다가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에 동조하고, 이후 왜적이 창궐하자 양광·전라·경상도 도절제체찰사(都節制體察使)가 되어 공을 세웠다.

1390년(공양왕 2) 김저(金佇)의 옥사 때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 위화도회군의 공으로 2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그해 이초(彛初)의 옥에 연루되어 청주옥(淸州獄)에 갇혔다가 홍수로 석방되었다. 이듬해 개성부판사(開城府判事)가 되나 부임하지 못하고 병사하였다.

카테고리

  • > >
  • > > >
  • > > >

관련이미지

남해 정지석탑

남해 정지석탑 경남 남해군 고현면. 정지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