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장

쟁장

[ 錚匠 ]

요약 조선시대 군기시(軍器寺)에 소속되어 징이나 꽹과리를 만드는 일을 맡아하던 사람.

조선시대 경공장(京工匠)의 하나로, 군기시에 소속되어 이나 꽹과리를 만드는 일을 맡아보았으며 정원은 11명이었다.

조선시대는 수공업이 분화되면서, 각 관아가 주체가 되어 경영하는 작업장에 삼번제(三番制)로 출역하는 관공장(官工匠)과 개인이 경영주체가 되는 사공장(私工匠)으로 나누어졌다. 관공장은 다시 중앙의 공조(工曹)와 그밖의 여러 관아에 소속되어 왕실과 관아의 수공업적 수요를 위하여 서울에서 전업으로 생산하는 경공장, 지방의 병영과 주·군·현에 소속된 외공장(外工匠)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고려시대부터 각 관아에 소속된 공장과 관노비·사노비로 구성되었으나, 차츰 양인으로 교체되어 조선시대에 와서는 양인이 주류를 이루었다. 장인들은 대부분 공역일(貢役日)에는 무보수로 관아에서 일하였으며, 그밖에는 공장세를 납부하는 대신 주민들의 생활용품을 제조·판매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장인들은 이런 공역을 피하여 도망하는 일이 많아졌고 16세기 초부터 관공장제 수공업은 쇠퇴하고 사공장제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관공장도 임금기술자로 고용되기도 하였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중앙에는 30개의 관아에 2,800여 명의 공장이 예속되어 129종의 물품을 만들었고, 지방에는3,500여 명의 공장이 27종의 물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무기제조를 관장하는 군기시에 16종의 공장 644명이 속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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