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시

군기시

[ 軍器寺 ]

요약 고려·조선 시대에 병기(兵器)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
군기시터

군기시터

고려 목종 때 설치된 군기감(軍器監)을 1362년(공민왕 11) 군기시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1392년(태조 1) 군기감을 설치하였으며, 1466년(세조 12) 군기시로 개칭하였다.

관원에는 의정(議政)이 맡는 도제조(都提調) 1명, 병조판서 또는 병조참판 중에서 1명, 무장(武將) 중에서 1명을 선발하여 2명의 제조(提調)를 두고, 그 밑에 정(正:정3품)·부정(副正:종3품)·첨정(僉正) 각 1명, 별좌(정·종5품)·판관(종5품)·별제(別提:정·종6품)·주부(主簿:종6품) 각 2명, 직장(直長:종7품) 1명, 공제(工製:종7품) 5명, 봉사(奉事:종8품) 1명, 공조(工造:종8품) 2명, 부봉사(副奉事:정9품)·참봉(參奉:종9품) 각 1명, 공작(工作:종9품) 2명을 두었다.

또 《경국대전》에 따르면 여기에 칠장(漆匠) 12명, 마조장(磨造匠) 12명, 궁현장(弓弦匠) 6명, 유칠장(油漆匠) 2명, 주장(鑄匠) 20명, 생피장(生皮匠) 4명, 갑장(甲匠) 35명, 궁인(弓人) 90명, 시인(矢人) 150명, 쟁장(錚匠) 11명, 목장(木匠) 4명, 야장(冶匠) 130명, 연장(鍊匠) 160명, 아교장(阿膠匠) 2명, 고장(鼓匠) 4명, 연사장(鍊絲匠) 2명 등 모두 644명의 공장(工匠)이 딸려 병기제조에 종사하였다.

부속 시설로는 야로소(冶爐所)·조갑소(造甲所)·대고(臺庫)·제조고(提調庫)·장인거소(匠人居所)·화약감조청(火藥監造廳)·궁전소(弓箭所) 등을 짓고, 많은 화약·각궁(角弓)·화포(火砲)를 제조하였다. 1884년(고종 21)에 폐지되고, 그 소관사무는 기기국(機器局)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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