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업

수공업

[ handcraft , 手工業 ]

요약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제공업(機械制工業)의 확립 이전의 공업형태.
물레를 이용해 실을 뽑는 할머니

물레를 이용해 실을 뽑는 할머니

수공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비롯되었으며,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때와 시기를 같이한다.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의·식·주 획득의 용구를 모두 수공업에 의해 생산하였다. 일부는 석기·토기·청동기 등의 형태로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수공업 및 농업은 아시아적 사회구성체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속에 일체화되었으며, 분화(分化)과정은 없었다. 고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인도·중국에서도 공예품·무기 등을 생산하는 수공업자가 일반 농민과 구별된 특수 신분으로 인정받지는 못하였으며, 수공업은 공동체 구성원 속에서 농업과 미분화(未分化)상태로 정착해 있었다. 수공업자가 특수 신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리스·로마 시대에 들어선 후의 일이다. 여기서 수공업은 전적으로 노예의 일이며, 각종 수공업품의 생산을 위하여 노예들의 작업장이 생겨나서, 3∼12명 정도의 노예를 사용하여 야금(冶金)·무기제조·피혁제조, 도기(陶器)나 약기·약품 등의 제조가 행하여졌다.

건축·조각 등 고도의 능력과 천부(天賦)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작업 이외는 자유로운 시민의 정업(正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수공업 중에서도 방직업만은 여자에 의한 가내공업으로 인정되었다. 중세 유럽에 와서 수공업자의 위치는 크게 변화하였는데, 초기의 게르만적 농촌공동체에서의 수공업자는 부락공동체 속에서 농구·생활용품 등의 생산에 전념하여 농민의 농산물과의 교환으로 생활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점차적으로 고객(顧客)생산을 확대하게 되나, 수공업자에게는 자신의 기술을 믿고 산다는 데서 독자적인 직인기질(職人氣質)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방직업은 공동체 내의 농가부업으로서 자급되었다. 11∼12세기 서유럽 각지에 상업부흥의 기운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자치적인 중세도시의 건설이 진행되자, 여기에 상인길드에 이어 12~13세기경부터 수공업자도 도시에 모여 각종 동일직종 길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원격지 상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였다. 수공업길드는 상업길드와 구별하여, 영국에서는 크라프트길드(craft guild), 프랑스에서는 메티에(métier), 독일에서는 암트(Amt) 또는 춘프트(Zunft)라고 하였다. 수공업길드의 규제는 매우 엄격하여 구성원의 수가 제한되고, 도장인(都匠人)·장인(匠人)·도제(徒弟)의 신분 질서가 엄수되었다.

신대륙 발견에 기인하는 근세상업의 발전은 과거 길드의 범주를 벗어나서 발전하는 농촌공업의 대두를 수반하였다. 16∼18세기 영국에서는 농촌공업이 모직물공업에서 가장 전형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공장제(工場制)수공업(Manufacture)이 발생하여, 다수 수공업자의 분업과 협업(協業)의 결합체계가 개개의 작업장에서 구현되어 수공업에 의한 최대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수공업은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제 공업의 확립에 의하여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구축되었다. 현재로서는 약간의 도기·칠기·염색·견직물 등의 공예품·민예품·귀금속가공업 등 이외에는 토건업의 일부(목수·미장이·타일공 등), 소규모의 인쇄업 분야 등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