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
[ free verse , 自由詩 ]
- 요약
형태상으로 정형시(定型詩)와 상대적인 입장에 서는 것으로서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으로 작자의 감정이 표현된 시.
정형시에서는 시의 한 단위가 보(步:foot)와 행(行:line)으로 이루어지나, 자유시형은 그것이 연(聯:stanza)으로 된다. 따라서 보다 산문에 가까운 산문시도 자유시의 일종으로 볼 수 있으나, 대개는 이를 구별하여 인용한다. 자유시의 형식은 그 기원을 멀리는 성서의 《아가(雅歌)》에서 찾을 수 있고, 가까이는 프랑스의 보들레르가 산문시 《파리의 우울:Spleen de Paris》(1869) 서문에서 자유시 정신을 부르짖음으로써 출발하였다. 자유시가 정형시의 성립조건에서 탈피한 이유는 근대정신이 운율의 법칙이나 일정한 어수(語數)의 틀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민중의 생활과 그 율동을 함께 하기 위한 때문이었다. 또한 자유시가 대두한 다른 하나의 직접적인 계기는 음악성을 부정하는 점에 있었다. 그러나 리듬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언어가 지니는 음의 의미를 통해서 형성되는 이미지의 예술성이 그 생명을 이룬다. 이를 가리켜 불규칙의 리듬, 곧 자유율(自由律) 혹은 내재율(內在律)이라고 일컫는다.
한국의 근대문학사에 있어 자유시의 첫 작품은 대개 1919년 《창조》지(誌)에 발표된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를 꼽는다. 그러나 1918년 11월 《태서문예신보(泰西文藝新報)》에 발표된 김억(金億)의 <봄>과 <봄은 간다> 등 두 작품은 이미 자유시의 형태를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918년 무렵부터 한국의 현대시(現代詩)는 자유시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시작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초창기 한국 문단에서 자유시를 창작한 주요 시인으로는 김억 ·주요한 ·남궁 벽(南宮璧) ·홍사용(洪思容) ·이상화(李相和) ·김소월(金素月) ·한용운(韓龍雲) ·김동환(金東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