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

이영

[ 李瓔 ]

요약 조선 세종의 서자(庶子). 영빈 강씨의 소생으로 화의군에 봉해졌다. 세조가 성삼문 등을 친국할 때 그 방법을 묻자 부복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금성대군이 모의한 단종복위운동사건에 연루, 아들과 함께 익산에 유배되어 죽었다.
화의군 이영 묘역

화의군 이영 묘역

출생-사망 1425 ~ ?
양지(良之)
시호 충경(忠景)

자 양지(良之), 시호 충경(忠景), 영빈(令嬪) 강씨(姜氏)의 소생이다. 1433년(세종 15) 화의군(和義君)에 봉해졌다. 1456년(세조 2) 세조가 성삼문(成三問) 등을 친국할 때 그 방법을 묻자 부복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이듬해 금성(錦城)대군이 유배지 순흥(順興)에서 부사 이보흠(李甫欽)과 모의한 단종복위운동사건에 연루되어 아들과 함께 익산(益山)에 유배, 그곳에서 죽었다.

가산을 몰수당하고 그의 자손이 종친록에서 삭제되었으나 성종 때 정희(貞熹)왕후의 유교(遺敎)로 용서받고 서울 장안 밖에서 살게 되었다가 다시 중종 때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영조 때에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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