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셴녠

리셴녠

[ 李先念(이선념) ]

요약 중국의 정치가. 항일유격전을 전개하고,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후베이성 인민정부 주석,우한시장, 재정부 부장 등을 지냈다. 70년대에 정치국원, 당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거쳐 1983년 국가주석에 선출되었고, 1985년 재선되었다.
출생-사망 1909.6.23 ~ 1992.6.21
국적 중국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훙안현[紅安縣]

후베이성[湖北省] 훙안현[紅安縣]의 빈농 집안에서 출생. 1926년 홍군(紅軍)의 일원으로 반군벌(反軍閥)투쟁에 참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년 후 국공합작(國共合作)이 와해되면서 홍군의 청년지휘관으로 부상(浮上), 루이진[瑞金]의 소비에트구(區)에 들어가 장정(長征)에 참가한 후 옌안[延安]의 항일 군정대학(軍政大學)에서 공부하고 홍군 제4방면군 정치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38년 말에는 허난성[河南省] 등 중위안[中原] 지구에 들어가 항일유격전을 전개하여 항일전의 근거지를 건설하였다. 1941년 신4군 제5사단장 겸 정치위원, 1945년 당 제7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당 중앙위원 후보로 선출되었다. 1946년 중국공산군의 중위안[中原] 철수와 더불어 중위안해방구로부터 북방으로 이동하였는데, 1947년 인민해방군의 반공(反攻) 개시와 함께 류보청[劉伯承]과 다시 중위안지구로 들어가 중위안해방구를 확대하였다.

국공내전(國共內戰) 중에는 중위안군구 사령원(司令員), 중국 공산당 정권 수립 후 1949년 중난[中南] 군사위원회 부주석, 후베이성 인민정부 주석, 중국공산당 후베이성 위원회 서기, 후베이군구(軍區) 사령관, 1952년 우한시장[武漢市長], 정무원(政務院) 재정경제위원회 부주임, 재정부(財政部) 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부총리 겸 재정부장이 되었고 1956년 당 정치국원에 선출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자본주의적 경향’으로 일시 비판받기도 하였으나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적극적인 비호로 당 및 정부에서의 자리가 보전되었고, 또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후 10월정변에 4인방(四人幇)이 숙청되는 와중에서도 무사하였는데, 이는 군부에 지지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3년 정치국원에 재선되고, 1977년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 1982년 재선되었다. 1983년 6월 국가주석에 선출되었으며, 1985년 9월 재선되었다. 그 후 1987년에는 모든 당직에서 물러났고 1988년 4월 주석직을 떠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에 취임하였다.

● 중국의 역대 주석
이 름 재임기간

제1대 주석

마오쩌둥

1949.10 ~ 1959.04

제2대 주석

류사오치

1959.09 ~ 1968.10

권한대행

쑹칭링
둥비우

1968.10 ~ 1981.05

제3대 주석

리셴녠

1983.06 ~ 1988.04

제4대 주석

양상쿤

1988.04 ~ 1993.03

제5대 주석

장쩌민

1993.03 ~ 2003.03

제6대 주석

후진타오

2003.03 ~ 2013.03

제7대 주석

시진핑

2013.03 ~ 현재


 

참조항목

중국공산당

역참조항목

국공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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