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4세

이반 4세

[ Ivan IV ]

요약 러시아의 황제(재위:1533∼1584). 극단적인 공포정치체제를 시행하여 이반뇌제라고도 불린다. 러시아의 경제적 발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반 4세

이반 4세

출생-사망 1530.8.25 ~ 1584.3.18
국적/왕조 러시아
재위기간 1533년∼1584년
별칭 이반뇌제(雷帝)
활동분야 정치

모스크바 대공(大公) 바실리 3세의 아들이다. 1533년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대귀족들의 전횡으로 고초를 겪었다. 이것 때문에 1547년 차르라고 칭하며 친정(親政)을 시작하고 나서는, 귀족세력을 제압하고, 종교세력 마저도 무력화시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만들었다. 또한 교회에서 소유한 막대한 땅을 빼앗아 지방귀족에게 봉토(封土)로 하사하여 그들의 지지를 받았다. 1550년대에는 행정 ·사법 ·군제 ·교회제도 등의 면에서 중앙집권화를 위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친위대를 조직하였으며 저항하는 세력은 학살하였다. 이반 4세의 폭정에 반대하는 세력이 무참하게 살육되었기 때문에 그들 이반 뇌제(雷帝)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이것의 피해는 농민과 시민에게도 파급되었다. 행정의 혼란과 경제의 쇠퇴를 초래하여, 농민이 새 농토를 찾아 이동하는 일이 계속되었으므로, 그의 만년에는 농민의 이동을 제한할 수 없게 되었다.

대외적으로는 타타르의 잔존 세력이 남아있는 카잔한국(汗國) ·아스트라한한국을 정복하고 볼가강의 전체 수로를 제압하여, 북빙양(北永洋)의 내해인 백해(白海)에도 개항장(開港場)을 설치함으로써, 러시아의 경제적 발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발트해로의 진출을 목적으로 선발회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리보니아전쟁은 실패하였다. 카자크족 에르마크가 서시베리아를 정복하여 타타르족을 멸망시킴으로써 러시아는 동방진출이 시작되었다. 그는 군주권의 신적(神的) 기원을 확신하였고, 크루프스키공(公)에게 보낸 유명한 서한 등에서 그 사상을 전개하였지만, 좀 광신적인 면도 있었으며, 나이가 들면서 의심하는 버릇이 강해졌다. 이런 까닭에 만년에 자신의 장남을 말다툼 끝에 죽이는 참사를 빚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