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융

칼 구스타프 융

[ Carl Gustav Jung ]

요약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연상실험을 창시하여, S.프로이트가 말하는 억압된 것을 입증하고, ‘콤플렉스’라 이름붙였다.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우고 성격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눴다.
출생-사망 1875.7.26 ~ 1961.6.6
국적 스위스
활동분야 심리학, 정신의학
출생지 스위스 바젤
주요저서 《심리유형론》(1920)
주요업적 인간 유형론(내향형과 외향형)

1875년 스위스 바젤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의사와 종교인이 많았으며 바젤에서 명망있는 집안에 속했다. 융의 할아버지는 의사였으며 바젤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을 지냈다. 외할아버지는 바젤 지역의 개신교 목사협회 회장을 지냈다. 그의 부친(파울 아힐레스 융)은 스위스 개신교 교회의 목사였고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어머니(에밀리 프라이스베르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융이 태어나기 전 계속된 사산으로 우울증을 앓았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요양원에 자주 머물면서 융은 어려서부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1895년 아버지가 사망한 이후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면서 어머니의 관심과 영향 속에서 성장하였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자신이 돈벌이와 학업을 병행해야만 했다.

청년기에는 바젤 후마니스티셰스 김나지움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였다. 이 시기에 아버지가 정신병원 상담 목사로 활동하면서 정신분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95년 바젤대학 자연과학부에 입학하여 해부학, 생물학 등 의학공부에 필요한 과정을 배웠으며 정신의학을 전공분야로 선택했다. 그가 정신의학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크라프트 에빙의 저서들이라고 회고했다. 1900년 12월 졸업한 후 취리히대학 부속 부르크흴츨리 정신병원의 E.블로일러 교수(1857~1939)를 보조하는 보조의사이자 연구원이 되었다. 이 시기에 활발하게 정신의학을 연구하였다. 한편 1903년 IWC 상속녀인 엠마 라우셴바흐와 결혼하였으며 엠마는 그의 비서이자 연구를 돕는 내조자로 충실하게 역할하였다.

1904년경 정신병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단어를 통한 연상실험을 창시하였다. 그는 단어연상법으로 S.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통해서 제기한 억압된 것, 즉 억압이론을 입증하고, 그것을 ‘콤플렉스’라고 이름붙였다. 1906년 조현병(정신분열병)의 증상을 이해하는 데에 정신분석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1907년 융은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있는 프로이트를 찾아가 교류하면서 서로의 연구에 공감하며 친분을 나누게 되었고 자신의 연구업적들에 의해 프로이트의 두터운 신뢰와 인정을 받게되었다. 이후 콤플렉스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서 사용하게 되었고 융과 부르크흴츨리 병원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08년 4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개최된 최초의 국제정신분석학회 제창자가 되었으며, 이 회의에서 발행하기로 결정한 기관지 《정신분석학 ·정신병리학 연구연보》의 편자(編者)로 뽑혔다. 1909년에는 미국 보스턴 클라크대학의 초청을 받아 프로이트와 함께 미국을 여행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리비도’라고 하는 개념을 성적(性的)이 아닌 일반적인 에너지라고 하였기 때문에 프로이트와 의견이 대립되어, 1914년에 정신분석학회를 탈퇴하고, 그 이후 자신의 심리학(분석심리학이라 일컬음)을 수립하는 데 노력하였다. 그의 심리학은 신비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는데다 난해하였기 때문에, 심리학 일반에 대해서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으나 인간의 유형을 ‘외향형(外向型)’과 ‘내향형(內向型)’으로 나눈 유형론(Typology)은 그의 큰 공적이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외향적 기질과 내향적 기질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어느한쪽이 우세한가에 따라 유형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1961년 6월 6일 색전증으로 사망했다. 대표적인 저서에 《심리유형론》(19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