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지

윤순지

[ 尹順之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하였으며, 환도 뒤 형조참의가 되었고, 164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1657년 《선조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출생-사망 1591 ~ 1666
본관 해평(海平)
행명
별칭 낙천(樂天)
활동분야 정치
주요작품 《행명집》

본관 해평(海平). 자 낙천(樂天). 호 행명(涬溟). 종조(從祖) 윤근수(尹根壽)에게 학문을 배웠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162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언관 등을 역임하였다. 인조 초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아버지가 평안도관찰사로서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되자 은거하였다.

1629년 부교리(副校理)에 등용되고, 1636년 병자호란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하였다. 환도 뒤 형조참의가 되었고, 164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 1654년(효종 5) 경기도관찰사로서 소송사건을 속결하지 않고 민원을 사서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1657년 실록수정청당상(實錄修正廳堂上)이 되어 《선조수정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대제학에 이어, 1663년(현종 4) 공조판서에 이르렀다. 시(詩)와 글씨에 뛰어났다. 문집에 《행명집》이 있다.

역참조항목

해평윤씨, 최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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