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강지곡 권상

월인천강지곡 권상

[ Worin cheongangjigok (Songs of the Moon’s Reflection on a Thousand Rivers), Volume 1 , 月印千江之曲 卷上 ]

요약 조선 세종이 1449년(세종 31)에 지은 불교 찬가(讚歌). 2017년 1월 2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월인천강지곡 권상

월인천강지곡 권상

지정종목 국보
지정일 2017년 1월 2일
소장 (주)미래엔
관리단체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재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운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시대 조선
종류/분류 기록유산 / 전적류 / 활자본 / 금속활자본
크기 1책

1963년 9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2017년 1월 2일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1447년에 왕명에 따라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보상절(釋譜詳節)》을 지어올리자 세종이 석가의 공덕을 찬송하여 지은 노래이다. 그러나 왕의 측근이었던 김수온(金守溫)이 왕명을 받들어 지은 것이라는 이설(異說)도 있다. 《월인천강지곡》이란, 부처가 나서 교화한 자취를 칭송한 노래라는 뜻으로, 상·중·하 3권에 500여 수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이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아울러 훈민정음으로 표기된 한국 최고(最古)의 가사(歌詞)이다.

이 책의 표기법에 관하여 몇 가지 두드러진 점을 들어보면, ① 당시의 맞춤법은 모두 표음(表音)의 원칙, 즉 소리나는 대로 적는 원칙에 따랐다. 곧, ‘사월인천강지곡 권상 폰트 이미지 1월인천강지곡 권상 폰트 이미지 2,바월인천강지곡 권상 폰트 이미지 3(食), 머그니(食), 마가(防)…’ 식으로 풀이씨(用言)와 줄기(語幹)와 씨끝(語尾)과의 구분이 지켜지지 않고 표기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일이시나, 눈에, 말이시나, 일흠은, 담아, 안아, 안월인천강지곡 권상 폰트 이미지 4시니이다, 낮과, 곶우흰, 곶비, 맞나월인천강지곡 권상 폰트 이미지 5며, 깊거다… ’ 등으로 비교적 현대 문법과 가깝다. ② 다른 문헌이 한자(漢字)를 앞세우고 그 밑에 한글로 음을 다는 표기법을 채택하고 있음에 비하여, 이 책은 그 위치가 반대로서 한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려는 주체성(主體性)의 발로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③ 종성(終聲)이 없는 자리에 ‘ㅇ’을 붙이던 당시의 한자음 표기법을 볼 수 없다는 점 등이다.

이는 《용비어천가》 《석보상절》 및 《훈민정음언해(訓民正音諺解)》 등과 함께 정음 창제 당시의 언어연구로서 빼지 못할 자료가 되지만, 《월인천강지곡》의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예술적인 독창성의 결여 때문에 그다지 높게 평가되지는 못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산일되어 상권만이 전하다가 1961년 진기홍(陳錤洪)에 의하여 발견되어 3권으로 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고, 1962년에 통문관(通文館)과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에서 각각 영인본을 간행하였다. 또한 1995년 12월 발견된 《월인석보(月印釋譜)》 권25에 새로운 《월인천강지곡》의 시 7수가 수록되었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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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지곡 권상 세종이 지은 찬불가 국보 제320호 세종이 그의 아내 소헌왕후가 사망하자 왕비의 공덕을 빌기 위하여 직접 지은 찬불가로 1447~1448년 사이에 간행된 것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상, 중, 하 3권이었으나 현재 상권 1책만 전해지며 중권의 떨어진 낙장이 전하고 있다. 권상에는 194곡의 찬불가가 실려있다. 수록된 찬불가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 하강하여 왕자로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 이후 번민으로 출가하여 수도를 통해 불도를 깨쳐 중생을 교화하다 열반에 이르는 과정을 서사화하였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