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미술

원시미술

[ primitive art , 原始美術 ]

요약 원시사회의 미술.

원시사회에는 오늘날과 같은 문명사회에 앞서 먼 옛날에 존재하였던 태고(太古) 사회와 근대에 존재하는 미개사회 등 두 가지가 있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태고의 원시사회에서 이루어졌던 미술이다. 수십만 년이나 계속된 이 원시시대는 다시 그것을 몇 개의 작은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수렵 ·채집 ·어로를 생업으로 삼았던 획득경제시대(시원시대)이며, 다음은 유치한 농경 ·목축에 종사했던 초기 생산경제시대이다. 그리고 시원시대는 다시 전기(BC 60만∼BC 35만 년경) ·중기(BC 35만∼BC 8만 년경) ·후기(BC 8만∼BC 7000년경)로 세분할 수 있다. 미술의 싹은 이미 시원시대 중기에 작품으로 인정될 만한 것이 나타나지만, 인간이 미술다운 미술을 제작한 것은 그 후기에 접어들면서부터이며, 특히 서유럽의 오리냐크 문화 ·마들렌 문화 ·러시아 남부의 코스티엥키 문화 등은 뛰어난 미술을 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원문화의 회화는 이탈리아와 우랄 지방에도 존재하지만, 대표적인 것은 프랑스 남부에서 에스파냐 북부에 걸쳐 분포하는 동굴벽화다. 이것은 프랑코-칸타브리아 미술이라 불리며 오리냐크 문화와 마들렌 문화에 비정(比定)된다. 이 그림들은 동굴 깊숙한 곳에 있는 성소(聖所)의 벽면이나 천장에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이상의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것으로, 종교적인 의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프랑스의 라스코, 퐁 드 곰을 비롯하여 에스파냐의 알타미라 등 동굴군(洞窟群)의 그림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특색은 ① 대상이 거의 엽수(獵獸)에 한정되어 주술사인 듯한 인물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② 개개의 동물이 독자적으로 묘사되어 전체적으로 정리된 구도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점, ③ 동물들이 한결같이 동적인 자세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 ④ 사실화가 아닌 인상화적인 수법이 동원되는 등 그 화법에서 갖가지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한편, 동(東)에스파냐군(群)으로 호칭되는 회화는 암벽이나 바위 뒤 같은 곳에 그려진 단채화(單彩畵)로서 수렵 ·무용 ·투쟁 등을 짜임새있는 구도로 묘사하였는데 마치 그것은 실루엣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연대는 시원시대 말기의 카프사 문화기에서 초기 생산경제시대에 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동에스파냐군에 속하는 회화는 아프리카 북부와 사하라 지방에 많은 영향을 끼쳐 아프리카에서는 전통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유럽 서부와 동부에 분포하는 시원미술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부조(浮彫)의 경우 주로 동굴 입구 또는 깊숙한 곳에 있는 성소(聖所)에 나체의 여인상이나 짐승의 모양을 새겨놓은 것이 많다. 각화(刻畵)는 작은 돌, 순록의 뿔, 뼈조각, 매머드 상아 등에 선각(線刻)으로 묘사한 것이 대부분인데, 장중한 느낌의 벽화와는 달리 그 수법은 활달한 데생화를 연상케 하는 친근감 넘치는 작품이 적지 않다. 조상(彫像) 중에서 매머드 상아, 돌 ·점토 등을 재료로 동물의 모양을 나타낸 것도 있으나, 비너스상이라고 불리는 나부상(裸婦像)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부상의 조각수법은 얼굴 ·팔 ·다리 등이 생략 표현된 반면, 유방이나 둔부가 과장 표현된 점이 특색이다. 그 밖에 주목되는 공예품으로는 순록의 뿔로 만든 지휘봉을 들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시원미술의 전체적인 특징은 ① 종교의식이나 주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 ② 비사실적이며 인상주의적 수법의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회화나 조각상을 가릴 것 없이 모두 그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 준다는 점, ③ 자손의 번영과 사냥의 대상이 되는 짐승의 번식, 그리고 풍성한 사냥의 수확 등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신앙이 그 바닥에 깔려 있다는 점 등이다.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생활환경이 급변하자 높은 수준에까지 다다랐던 시원미술은 마침내 쇠퇴하여 종적을 감추었다. 인간은 농경 ·목축의 방법을 발견함으로써 이 난관을 극복하고 다음 시대의 약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초기 농경문화)의 미술은 BC 6000경부터 오리엔트를 중심으로 재출발하였다. 초기 농경문화의 미술은 구대륙뿐만 아니라 신대륙에까지 널리 분포하였다. 가장 선진적이었던 오리엔트 미술을 살펴보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가지무늬토기[彩文土器]이고, 다음이 대모신(大母神)의 조각상과 금은 공예품들이었다. 그러나 가지무늬토기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그 수법이 대체로 고졸(古拙)한 편이었다. 한편, 벽돌 굽는 방법이 발명됨으로써 건축은 착실한 발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초기 농경문화의 미술 역시 종교와 불가분의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비슷한 단계에 있는 근대의 미개사회 미술과 비교할 때 그것은 그로테스크성(性)과 번잡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특색으로 들 수 있다.

또한 원시미술은 현대미술의 형성에도 큰 기여를 하였다. 20세기 초의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 등은 오지의 토인조각에서 힌트를 얻었다. 당시의 많은 화가들은 메커니즘을 거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원시미술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하였다. P.고갱은 아프리카 흑인예술에서 자극을 받고 타히티섬으로 갔으며, H.루소는 ‘나이브 아트’라는 독특한 미술양식을 창조했는데, 이는 원시미술의 한 전형이다. 시원시대와 초기 생산경제시대의 원시미술은 오늘날 사실주의나 갖가지 신경과민적인 표현양식에 싫증을 느낀 현대인들에게 자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