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원세훈

[ 元世勳 ]

요약 독립운동가 ·정치가. 동만주로 망명하여 독립단,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露韓族會中央總會) 등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등을 창당하였으며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여 남북협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사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87.7.10 ~ 1959.12.25?
춘곡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함남 정평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89)

호 춘곡(春谷). 함남 정평(定平) 출생. 1906년 상경하여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 재학 중에 이상설(李相卨) ·이동휘(李東輝) 등과 청년운동에 참여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1915년 니콜라옙스크에서 이상설 ·이동녕(李東寧) 등과 함께 대동학교를 설립하였다. 1917년 이동휘 ·문창범(文昌範) ·고창일(高昌一) 등과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露韓族會中央總會)를 조직, 상임위원 및 재정부장에 취임하였다. 이어 1919년 중앙총회를 대한국민의회로 개칭하고, 그 해 2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치독립을 선언하는 시위를 벌였다.

1923년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여 임시정부를 개조하자는 개조파에 맞서 새로운 독립운동기관을 창설하자는 창조파에 가담, 국민위원회를 조직하고, 다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민족진영 통합에 노력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1927년 신채호 등의 구출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新義州)형무소에서 2년간 복역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후 국내에서 《중앙시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8 ·15광복 후에는 고려민주당 ·조선민족당 ·한국민주당 ·조선농민당을 창당하는 한편, 민족자주연맹을 결성하여 1948년 김규식(金奎植)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56년 북한당국의 종용으로 납북인사들로 결성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의 상무위원이 되었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김규식,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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