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

윤해

[ 尹海 ]

요약 만주와 러시아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북간도 간민회를 조직하여 교민자치와 독립운동 기반조성에 힘썼다. 상하이 국민대표회의 부의장을 지냈고, 창조파의 일원으로 신정부인 조선공화국 창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출생-사망 1888.3.5 ~ ?
별칭 일명 호제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함남 영흥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90)

일명은 호제(湖濟)이다. 함경남도 영흥(永興)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북만주로 망명하였다. 1911년 12월 에서 창설된 권업회(勸業會)에 참여하였고, 1915년 3월 북간도에서 이봉우(李鳳雨) 등과 간민회(墾民會)를 조직하여 교민자치활동과 독립운동 기반조성에 주력하였다.

1917년 12월 문창범(文昌範)·원세훈(元世勳)·(高昌一) 등과 함께 전로중앙총회(全露韓族會中央總會)를 조직하여 부회장에 선출되었고, (朴殷植)·남공선(南公善) 등과 함께 기관지 《청구신보(靑邱新報)》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1919년 2월 전로한족회를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로 개편하고 고창일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었으나,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파리강화회의가 끝난 후인 9월 26일에야 도착하여 참석하지 못하였다. 1923년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서 (安昌浩)와 함께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개조파(改造派)와 창조파(創造派)가 대립하자 신숙(申肅)·원세훈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것을 주장한 창조파에 속하여 활동하였다.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된 후 창조파 인사를 중심으로 국민위원회(國民委員會)와 국무위원회(國務委員會)를 조직, (金東三)에 이어 의장으로 선임되어 신정부인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같은 해 8월 원세훈·신숙·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조선공화국을 설치하려고 하였으나 러시아 당국에 의해 추방당하자 (李東輝)와 함께 중국 지린성[吉林省] 영고탑(寧古塔)으로 갔다가 1924년 다시 [北京]으로 돌아왔다. 그뒤 1934년 러시아로 망명하여 국제공산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하였다. 1990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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