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선

우범선

[ 禹範善 ]

요약 조선 후기의 무신. 을미사변 때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휘하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살다가 조선의 고영근에 의해 살해되었다.
출생-사망 1857 ~ 1903.11
본관 단양(丹陽)
활동분야 정치, 군사
출생지 충북 단양

본관은 단양(丹陽) 우씨이다. 1857년 5월 충청북도 단양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집안은 조상 대대로 무인의 맥을 이었다. 어려서부터 병서를 익혔으며, 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에 배치되었다. 1881년(고종 17) 별기군(別技軍)에 자원하여 참령(參領)이 되고 김옥균이 주도하는 개화파에 가담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대원군파로 몰려 평안북도로 귀양을 갔다가 평안감사 민병석에 의해 장위영(壯衛營) 영관으로 발탁되었다. 1894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 의원이 되고 갑오개혁에 가담했다. 1895년 일본이 주도하여 훈련대가 창설되자 제2대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해 10월 7일 명성황후는 친일성향의 훈련대에 위협을 느끼고 해산과 무장해제를 명하였다.

1895년(고종 32) 10월 8일 훈련대 해산 다음날 우범선은 이두황(李斗璜)과 함께 휘하장병을 이끌고 일본군 수비대와 함께 궁궐에 침입,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弑害)하는 을미사변에 가담하였다. 그는 명성황후의 시신에 석유를 부어 태우는 마지막 처리 과정에도 가담하였다. 우범선은 조선을 개화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고, 명성황후를 제거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오판(誤判)하였다. 1896년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뒤 일본으로 망명, 도쿄[東京]에 거주하였다. 일본정부의 보호와 후원을 받았고, 일본 여성 사카이[酒井 仲]와도 결혼하였다. 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농학자(農學者) 우장춘(禹長春)이다(1898 출생). 이후 히로시마 인근 구레시[吳市]에서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거주하였다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망명해있던(그러나 명성황후의 총애를 받았던) 고영근(高永根)·노원명에게 암살당하였다(1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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