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 왕조

응우옌 왕조

[ Nguyen dynasty , 阮王朝(완왕조) ]

요약 베트남 최후의 왕조(1802∼1945).
뜨득 황제릉 입구

뜨득 황제릉 입구

창건자는 응우옌푹아인[阮福映]으로, 여왕조(黎王朝)를 멸망시킨 떠이선당[西山黨]의 내분을 틈타 국내를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다. 재위 중의 연호를 따서 가륭제(嘉隆帝)라고도 부르며, 세조(世祖)라는 시호를 사용하였다. 세조 가륭제는 국호를 베트남이라 정하고, 여왕조의 구제(舊制)를 존중하면서 새 질서의 건설에 힘썼으나, 2대 임금 성조 명명제(聖祖 明命帝:1820∼41)는 이를 일소하고 (淸)나라 제도를 채택함과 동시에 유교사상에 입각한 중앙집권적 관료제(官僚制)를 확립, 베트남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갖는 전제군주국가를 이룩하고, 국호도 다이남[大南]으로 고쳤다.

그 뒤를 이은 헌조 소치제(憲祖 紹治帝) ·익종 사덕제(翼宗 嗣德帝)도 성조의 정치를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그리스도교의 탄압과 양이정책(攘夷政策) 때문에 프랑스의 침략이 노골화되었다. 1858년 프랑스-스페인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1862년 체결한 제1차 사이공조약으로 프랑스령 식민지가 되는 단서가 되었다. 그후 1874년 제2차 사이공조약에 따라 남부 6개 성(省)을 프랑스에 식민지로 할양하였고, 1883년 및 1884년 후에[順化]조약으로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에 대한 종주권(宗主權)문제로 청프랑스전쟁이 일어났고, 그 결과 베트남은 청나라의 보호를 벗어나 1887년 성립된 '프랑스령(領) 인도차이나연방'의 일부가 되었다.

프랑스령 시대의 베트남은 3개의 지역으로 분할되어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는데, 응우옌 왕조는 그중 안남(安南)의 왕조정부로서 존속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1945년 베트남독립동맹(베트민)의 8월혁명 때 제13대 바오다이제(帝)의 퇴위 선언으로 완전히 몰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