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트쿠튀르

오트쿠튀르

[ Haute couture ]

요약 고급 맞춤복 또는 매년 1·7월 파리에서 열리는 고급 맞춤복 박람회.

‘고급의’라는 뜻의 ‘오트’와 ‘재봉’ 또는 ‘맞춤복’을 뜻하는 ‘쿠튀르’를 합친 말로 영어에서의 ‘하이 패션(high fashion)’과 동의어이며, 특히 여성복 제작과 관련된다.

1858년에 찰스 프레데릭 워스가 상류계급 여성을 겨냥한 첫 오트쿠튀르 하우스를 파리에 개최하였고, ‘패션 디자이너’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이는 남성복 재봉사인 테일러(tailor), 여성복 재봉사인 드레스메이커(dressmaker)와는 다른 개념으로, 디자이너는 계절에 앞서 일련의 창작 의상들을 발표하였고, 이것이 전세계 패션 유행의 방향을 결정하였다.

1868년에는 ‘파리 고급의상점 조합’인 ‘르 샴브 생디카 드 라 오트쿠튀르(Le Chambre Syndicale dela Haute Couture)’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오트쿠튀르 의상을 세 가지로 정의하였다. 첫 번째로 착용자에게 잘 맞도록 주문 제작하여 디자인과 사이즈가 고객 개인에게 특정된 것이며, 두 번째로 자수·비딩(beading)·스티칭(stitching)등 특정 분야 전문장인의 수공예에 의한 것, 그리고 최고급 소재와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라 정의하였다.

1921년에는 오트쿠튀르의 디자인이 복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술산업보호협회’인 ‘레소시아숑 드 프로테숑 데스 인더스트리 아티스티크 시즈니에(L’Associationde Protection des Industries Artistiques Saisonnieres)'를 만들었다. 디자이너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창작물을 모델이나 마네킹에 입혀 앞·뒤·측면에서 사진을 찍어 보관하였다.

1945년에 파리 고급의상점 조합은 ‘오트쿠튀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위한 조건을 규정하였고 당시 100여 개의 브랜드에 자격을 부여하였다. 1992년 최종 수정된 조건에 의하면 첫째, 디자인은 개인 고객을 위해 한번 이상의 가봉을 거쳐 맞춤 제작된 것이어야 하며 둘째, 파리에 최소 15명의 종일 근무 사무직을 갖춘 작업장이 있어야 하고 셋째, 적어도 하나의 작업장은 최소 20명의 종일 근무 기술직을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1년에 2번 매 시즌마다 최소 50개의 디자인을 발표해야만 자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쿠튀르 하우스의 수는 19개까지 감소하였고 많은 디자이너들이 조합의 엄격한 규칙을 탓하였지만, 합성재료를 이용한 값싼 대량생산 패션의 성장과 광범위한 경기침체가 중요한 원인이었다. 티에리 뮈글러(Thierry Mugler, 1948~)나 크리스티앙 라크루아도 이 시기에 조합을 떠났다. 현재는 많은 디자이너들이 프레타포르테에 치중하는 추세이며, 오트쿠튀르는 판매의 목적 보다는 예술로서의 패션을 선보여 기성복 디자인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현재 활약하는 유명한 디자이너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장 폴 고티에·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피에르 발맹·가브리엘 샤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