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위

오정위

[ 吳挺緯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현종 때 호조 ·형조 ·공조의 판서 등을 지냈고 숙종 초에 남인(南人)이 강 ·온 양파로 갈릴 때 강경론을 지지하였다. 이후, 예조판서를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공북루

공북루

출생-사망 1616 ~ 1692
본관 동복(同福)
군서(君瑞) ·서장(瑞章)
동사(東沙)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는 군서(君瑞) ·서장(瑞章), 는 동사(東沙)이다. 관찰사 단(端)의 아들이며 당숙 전(塼)에게 입양되었다.

1645년(인조 2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52년(효종 3) 홍문관부교리 ·수찬, 1659년 승정원승지 등을 역임하고 1664년(현종 5) 예조참의가 되었다. 이후 충도관찰사 ·양주(楊州)목사 ·경기도관찰사 등 외직을 거쳐 1672년 호조 ·형조 ·공조의 판서를 지냈다.

숙종 초 서인(西人) 송시열(宋時烈)의 처벌문제로 남인(南人)이 온건파와 강경파로 갈릴 때 청남(淸南)에 속하여 강경론을 지지하였다. 1677년(숙종 3) 동지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예조판서를 거쳐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렀다. 1680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무안(務安)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삭주(朔州) ·보성(寶城)에 이배(移配)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풀려나와 다시 공조판서에 기용되었다가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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