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히크

엔히크

[ Henrique of Portugal ]

요약 포르투갈 주앙 1세의 아들로 대항해시대의 시작을 이끈 인물.
원어명 Henrique de Avis
출생-사망 1394.3.4 ~ 1460.11.13
국적 포르투갈
활동분야 정치, 탐험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Dinastia de Avis)의 제1대 왕인 주앙 1세(João I, 재위1385∼1433)의 셋째아들로, 초대 비제우 공작(Duque de Viseu)이다. 사하라사막 남쪽 지역을 잇는 아프리카 서부 항로의 개척을 추진해서 대항해시대(지리상의 발견)의 시작을 주도하였다. 그래서 ‘항해왕자(O Navegador)’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포르투갈 최남단 알가르브(Algarve)의 사그르스곶(Ponta de Sagres)을 거점으로 활동해서 ‘사그르스의 왕자(Infante de Sagres)’라고도 불린다. 보통은 간단히 ‘엔히크 왕자(Infante Dom Henrique)’라고 부른다.

엔히크 왕자는 1394년 3월 4일 포르투에서 주앙 1세의 셋째로 태어났다. 생모는 잉글랜드의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의 손녀인 필리파(Philippa of Lancaster, 1359∼1415)이다. 1414년에는 아버지 주앙 1세와 함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아프리카 북쪽 해안의 세우타(Ceuta) 공격에 참여했다. 포르투갈은 이듬해 세우타를 점령해서 북아프리카에 거점을 확보했는데, 엔히크 왕자는 이 일을 계기로 이슬람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인도나 사하라사막 남쪽 지역과 교역할 수 있는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포르투갈 최남단의 사그르스곶에 ‘왕자의 마을(Vila do Infante)’을 만들어 조선소와 항해술·지도제작법 등을 가르치는 학교 등을 세웠다. 그리고 탐험가들을 후원해 아프리카 서부의 항로 개척을 추진하였다.

엔히크 왕자의 후원으로 1419년 주앙 곤살베스 자르쿠(João Gonçalves Zarco)와 트리스탕 바스 테이셰이라(Tristão Vaz Teixeira)가 마데이라제도를 발견해 그곳을 식민화하였다. 그리고 1427년에는 곤살루 벨류(Gonçalo Velho) 등이 아조레스제도를 발견했다. 1434년 질 이아느스(Gil Eanes)는 유럽인들이 그때까지 바다가 끓고 있어서 항해를 못한다고 여기고 있던 보자도르곶(Cape Bojador) 남쪽 지역까지 진출했다.

이처럼 엔히크 왕자가 주도한 항로 개척이 성과를 거두면서 엔히크 왕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 왕위에 오른 형 두아르트 1세(Duarte I, 재위 1433∼1438)에게서 보자도르곶 남쪽 지역에서 얻는 이익의 5분의 1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1437년 엔히크 왕자는 북아프리카의 탕헤르(Tánger) 공격에 나섰다가 이슬람군에 크게 패하기도 했는데, 이 전투에서 동생인 페르난두 왕자(Fernando, o Infante Santo, 1402∼1443)가 포로로 억류되었다.

그 뒤로도 엔히크 왕자는 코임브라 대학에 천문학 강좌를 개설하는 등 포르투갈의 해양 진출을 뒷받침했다. 이 시기에 포르투갈은 3개의 마스트를 지닌 선박인 캐러벨(Caravel)을 이용해 원거리를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였다. 1441년 누누 트리스탕(Nuno Tristão)과 안탕 곤살베스(Antão Gonçalves)는 지금의 모리타니(Mauritania) 해안의 라스누아디부(Ras Nouadhibou) 반도에 도달했고, 1443년에는 아르갱 만(Baie d'Arguin)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1444년에는 바르톨로뮤 디아스(Bartolomeu Dias)의 아버지인 디니스 디아스(Dinis Dias)가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끝인 베르데곶(Cap Vert)에 이르렀다. 1450년대에는 카보베르데(Cabo Verde) 군도를 발견했고, 1460년대에는 지금의 시에라리온 연안까지 도달했다. 이로써 엔히크 왕자는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을 잇는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원래의 목적을 이루었다.

엔히크 왕자는 1460년 11월 13일에 사그르스의 왕자의 마을에서 죽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서부 항로의 개척을 계속 추진하여 1488년에는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이르렀다.

이처럼 엔히크 왕자는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어 포르투갈의 융성을 가져왔고, 포르투갈은 1960년 엔히크 왕자가 죽은 지 500년이 된 것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딴 국가훈장(Ordem do Infante Dom Henrique)을 만들었다. 그리고 1996년에는 최고액권 화폐인 1만 이스쿠두(escudo) 지폐에 그의 초상을 실었고, 이 화폐는 1999년 유로화가 도입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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