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척
[ 楊水尺 ]
- 요약
고려시대의 천민계급.
수척(水尺)·화척(禾尺)·무자리라고도 한다. 1425년(세종 7) 이들을
양민화(良民化)하려는 정책에 따라 백정(白丁)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 기원에 대해서 《고려사》에서는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굴복하지 않던
자들을 모아 압록강 밖으로 쫓아버린 무리라 하였으나,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은 여진 또는 거란 계통의 북방 귀화인(歸化人)으로서, 일반 백성과 융합되지
못하고 수초(水草)를 따다가 고리[柳器]를 만들고 사냥을 하는 등 방랑생활을 하며
도살(屠殺)·육상(肉商)·창우(倡優:배우)를 업으로 삼아 특수부락을 형성하였다.
또 《고려사》에서는 이들은 국가의 부역(賦役)과 호적에서도 제외된 국민으로서
이주(移住)가 무상한 방랑집단이며, 특히 양수척의 유기장가(柳器匠家)에서는
기녀(妓女)가 나왔다 하여 기생의 유래를 양수척에 둔다. 이들의 일부는
왜구(倭寇)를 가장하고 민가 및 관청을 습격하여 노략질도 하고, 거란군이 고려에
쳐들어올 때 그 앞잡이가 되기도 하여 백성의 원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