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카라

앙카라

[ Ankara ]

요약 튀르키예의 수도.
케말 아타튀르크 동상

케말 아타튀르크 동상

위치 아나톨리아 반도의 중앙부
경위도 동경 32°52′, 북위 39°52′
면적(㎢) 2516
시간대 UTC+2 Summer: UTC+3
행정관청 소재지 Sağlık Mah. Mithat Paşa Cad. No:3 Sıhhiye-Çankaya/ANKARA
홈페이지 www.ankara.bel.tr
인구(명) 5,639,076(2019년)

소(小)아시아 아나톨리아 고원의 북쪽 기슭에 있으며, 해발고도 800∼1,000m의 사카리아강 상류인 앙카라강 연안에 있다. 아나톨리아 전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통로에 있으므로 도시로서의 기원은 고대 히타이트시대에서부터 비롯된다.

‘앙카라’라는 도시 명칭의 유래는 다양하다. 기원전 2000년경 이 지역에 들어온 히타이트인의 신전인 ‘안쿠와스(Ankuwaš)’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고, 기원전 10세기경 이 지역에서 닻이 발견되며 그리스어로 ‘닻(anchor)’을 의미하는 앙키라(Ánkyra)로 불리기 시작하였다는 설이 있다. 로마제국에서는 이 지역을 ‘앙키라(Ancyra)’로 불렀고, 11세기 후반 셀주크투르크족이 지배한 이후부터 오스만 제국 시절까지는 ‘앙고라(Angora) 혹은 앙기라(Angira)’ 불리다가 1923년 앙카라로 개칭되었다.

기원전 25년 아나톨리아 반도를 장악한 로마제국은 앙카라를 갈라티아 속주의 수도로 삼고 자율권을 주어 통치하였다. 당시 앙카라는 무역의 중심지이자 소아시아 장악의 군사적 요충지로 발전하였다. 로마제국의 뒤를 이어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앙카라를 통치하였고, 비잔틴 제국의 멸망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 시기에는 이스탄불에 밀려 점차 정치·경제적 활력을 잃었으나, 1923년 10월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이 탄생하며 수도로 지정되었고, 1925년 이후 신시가의 건설과 함께 근대적 도시로 변모하였다.

앙카라는 튀르키예의 중앙에 위치하여 전 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각종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다수의 공장이 위치한다. 도시는 구시가인 울루스(Ulus)와 신시가지인 예니세히르(Yenisehir)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시가는 북동부의 앙카라 구릉에 있는 오스만시대의 앙카라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고, 구시가의 남쪽에 도시계획에 바탕을 둔 정연한 신시가가 자리 잡고 있다. 튀르키예의 정치, 경제, 관광, 문화의 중심지이자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앙카라 본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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