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카

아소카

요약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 그의 치세 중에는 불교를 비롯한 갠지스강 유역의 고도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급속히 퍼져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또한 불교도들은 그를 이상적 군주로 추앙하였고, 많은 설화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되었다.
원어명 Aśoka
출생-사망 ? ~ ?
별칭 아육왕·아수가
국적 인도
활동분야 정치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으로, 그의 치세 중에는 불교를 비롯한 갠지스강 유역의 고도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급속히 퍼져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한역불전(漢譯佛典)에는 아육왕(阿育王)·아수가(阿輸迦)로 기록되어 있다. 그의 조부 찬드라굽타 시절에 이룩한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미치는 광대한 영토를 이어받아 지배자로 군림하였다. 그는 정치 이념을 내걸고 그 이념 실현에 정열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영역 내의 석주(石柱)나 암석에 새겨진 그의 조칙(詔勅)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가운데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에서 발견된 그리스어나 아마르어로 새겨진 것도 있다.

이 조칙의 내용에는 그가 왕위에 오른 지 9년째 되던 해 인도의 남동부, 오리사 해안의 칼링가 지방을 정복했는데, 그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고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으며, 그후로는 무력에 의한 정복을 중지하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인 다르마(dharma:法)에 의한 정치를 이상(理想)으로 삼고 이를 실현하는 데 진력하였다. 부모·어른에의 순종, 살생을 삼가는 등의 윤리를 백성들에게 장려하고, 지방관이나 신설된 관리에게 명령하여 백성들이 윤리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였다.

아소카 본문 이미지 1
파르티아마우리아왕조안드라(안드라왕국)마가다촐라(촐라왕조)칼링가(칼링가왕국)펀자브

또 도로·관개(灌漑) 등의 공공사업을 전개하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다. 당시 인도에는 그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없었고, 북서 국경의 그리스 세력도 그들 내분 때문에 다른 지방을 침략할 힘이 없었다. 이와 같은 정세에서 제반 생활양식이 다른 광대한 영토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가 취한 정책이 매우 현명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이면에는 원시불교의 영향이 있었다. 또한 그의 정치이념은 인근 제국이나 제민족에게까지 전파되어 그의 사절(使節)이 이집트·마케도니아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왕의 정책은 36년 통치 후에는 점차 쇠퇴하였으나, 그의 치세(治世) 중에는 불교를 비롯한 갠지스강 유역의 고도의 문화가 다른 지방에 급속히 퍼져 문화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또한 불교도들은 그를 이상적 군주로 추앙하였고, 많은 설화를 탄생시킨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