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원의 옥

심기원의 옥

[ 沈器遠─獄 ]

요약 1644년(인조 22) 남한산성 수어사(守禦使) 심기원 등이 회은군(懷恩君) 이덕인(李德仁)을 추대하려다 발각되어 처형된 사건.
언제 1644년(인조 22)
누가 남한산성 수어사 심기원
무엇을 회은군 덕인
어떻게 회은군 덕인 추대

심기원은 인조반정공신으로서 청원부원군(靑原府院君)에 봉해지고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을 지냈다. 1644년 좌의정으로 수어사를 겸하게 되었다. 인조는 자신의 신변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쳐 소현세자를 견제하고 며느리 강빈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차 있었고 환관 김언겸을 감시인으로 동행토록 조치했다.

심기원은 인조반정의 공신이었지만 인조의 통치 행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일부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인조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소현세자를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수어사 심기원은 심복의 장사들을 호위대(扈衛隊)에 두고, 지사(知事)를 지낸 이일원(李一元), 광주부윤(廣州府尹) 권억 등과 함께 회은군 이덕인을 추대하기 위해 모반을 꾀하였다. 회은군 이덕인을 추대한 이유는 소현세자가 모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심기원의 부하 황헌(黃瀗)·이원로(李元老) 등이 훈련대장 구인후(具仁垕)에게 밀고함으로써 반정모의가 탄로되어 일당은 주살되고 회은군은 사사(賜死)되었다. 중국에 잡혀가 있던 임경업(林慶業)도 관련이 있다 해서 소환되어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참조항목

심기원, 회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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