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팔균

신팔균

[ 申八均 ]

요약 한말의 독립운동가. 신흥무관학교 교관에 취임,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다가 1922년 통의부의 군사위원장이 되어 일본군과 수십 차례 교전함으로써 독립군의 사기를 높였다.
신팔균 사적비

신팔균 사적비

출생-사망 1882.5.19 ~ 1924.7.2
동천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충북 진천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3)

호는 동천(東川)이다. 충청북도 진천(鎭川)에서 출생했다. 1902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 육군 참위(參尉)로 임관하여 1907년 정위(正尉)로 진급, 강계진위대(江界鎭衛隊)에 근무하던 중, 일제의 강압으로 대한제국군이 해산되자, 통분한 나머지 고향 진천군으로 가 이월청년학교(梨月靑年學校)를 세우고 청년교육에 열중하였다.

1910년 이 땅이 일제에 의하여 강점되자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진력하고, 1918년 유동열(柳東說)·여준(呂準)·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기미(己未)독립선언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는 무오(戊午)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1919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가담하여 지청천(池靑天)·이범석(李範奭) 등과 같이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교관에 취임,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다가 1922년 통의부(統義府)의 군사위원장이 되어 일본군과 수십 차례 교전함으로써 독립군의 사기를 높였다. 1924년 7월 독립군의 훈련요새지인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 2도구(二道溝) 밀림 속에서 무관학교 생도들과 독립군의 합동군사훈련 중 일본군에 매수된 장쭤린군[張作霖軍]의 습격을 받고 적의 흉탄에 맞아 죽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대동청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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