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방

신라방

[ 新羅坊 ]

요약 중국 당(唐)나라(618∼907) 때 중국의 동해안 일대에 설치되었던 신라인의 집단거주지역.

대표적인 곳으로서 산동(山東)반도, 강회(江淮)지방, 항주만(杭州灣) 등이 꼽힌다. 신라방이 형성될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당나라의 개방적인 이민족 정책, 신라와 당나라의 지속적인 교류와 우호적 관계, 두 나라 사이의 지리적 접근성 등을 들 수 있다.

당나라 때 다양한 신라 사람들이 중국대륙으로 건너가 살았다. 주로 교역하던 상인들이 많았으나, 견당사(遣唐使)라고 불리는 사신단, 학문을 익히러 간 유학생, 불법을 배우러 간 구법승(求法僧), 그리고 경제적 난민과 정치적 망명객도 상당수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진다. 본래 중국에서 방(坊)이란 성(城) 안에 구획된 거주지역을 일컫는 용어이다. 중국의 성은 여러 방(坊)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각 방에는 방정(坊正)이라는 책임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신라방이란 신라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방을 가리킨다. 신라방의 방정은 신라인이 맡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방의 책임자가 총관(總管)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한편, 성 바깥에 형성된 신라인의 집단 거주지역은 흔히 신라촌(新羅村)으로 불리었다. 신라촌의 책임자도 신라인으로서 흔히 촌장(村長)으로 불리었으며, 여러개의 신라촌을 묶어 신라소(新羅所) 혹은 구당신라압아소(勾唐新羅押衙所)라는 관청에서 통제했다고 한다.

신라방은 주로 바다 근처 도시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그곳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은 주로 상업과 해운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신라인의 해상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조선업과 선박수리업 등이 발달했으며, 당나라에 왕래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현지 사정을 알려주는 역어(譯語)와 통사(通事)가 있었다. 당나라의 관리가 된 신라인도 다수 확인된다. 이에 비해 성 바깥 신라촌의 경우에는 농업과 어업 등 주로 1차 산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방과 신라촌의 정치구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신라인의 자치지구이며 일종의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작용했다는 견해가 유력하였으나, 최근에는 이들이 당나라의 강한 통제를 받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